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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席] 붕어빵이 생각나는 요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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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席] 붕어빵이 생각나는 요즘
  • 최재혁 지방부국장
  • 승인 2022.12.22 10: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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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 지방부국장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며 어느덧 거리 포장마차에선 하나둘 붕어빵 굽는 냄새가 풍겨나온다. 기다리는 순간조차 행복하다. 노란 양은주전자에서 우윳빛 반죽이 쏟아지면 입안엔 벌써 침이 고인다. 빵틀 안에서 반죽과 앙금이 서로를 뜨겁게 껴안는 사이, 빵틀은 닫히고 뒤집히고 열리며 경쾌하게 춤춘다. 달큰한 냄새, 따끈한 감촉, 노릇한 색깔, 바삭한 식감. 바람에 펄럭이는 작은 천막 안은 오감의 축제장이 된다. 붕어빵 노점에선 그렇게 ‘맛있는 겨울’이 익어간다.

이달로 들어서자마자 날씨가 영하권으로 떨어졌다. 사람들도 몸을 움츠린 채 종종걸음으로 바삐 거리를 오간다. 날씨가 추워지면 자연스레 길거리의 대표적인 겨울 간식 붕어빵 생각이 절로 난다. 적당하게 구워진 노르스름한 색깔에 겉은 바삭바삭하고 속은 따끈따끈한 팥으로 채워진 붕어빵은 차가운 날씨에 딱 어울리는 입안의 행복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올해는 거리에서 붕어빵 가게가 눈에 띄게 줄었다고 한다. 게다가 가격도 껑충 올랐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대체로1000원을 주면 3개를 살 수 있었지만, 올해는 2개로 줄어든 곳이 많다. 찾기도 어렵고 개수도 줄다 보니, 이제는 길 가다가 생각나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었던 예전의 그 만만한 붕어빵이 아니다.

‘붕어빵의 계절’을 우울하게 만든 원인은 재료 가격 상승. 최근 붕어빵 안을 채우는 데 드는 수입산 팥(40㎏)의 도매가격이 지난해보다17%가량 올랐다고 한다. 여기다 업소용 식용유(18L) 가격도 올해 초보다 2배로 뛰었고, 밀가루값 역시 많이 상승했다.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에서 최근 거래되는 밀의 t당 가격은 작년보다40% 이상 급등했다.

재료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붕어빵을 팔아도 수지를 맞추기가 어렵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붕어빵 가격을 올리면 길거리 간식의 가격 정체성(?)을 유지할 수 없어 매출 감소를 각오해야 한다. 코로나19팬데믹에 의해 촉발된 전 세계의 인플레이션 파고가 겨울철 서민의 대표적인 간식까지 길거리에서 몰아내고 있는 붕어빵의 처지가 애잔하기까지 하다.

붕어빵의 역사는 100년에 가깝다. 1930년대 우리나라에 들어온 일본의 ‘도미빵(다이야키)’이 시초다. 밀가루가 주재료인 붕어빵은 1950~1960년대 미국 곡물 원조를 계기로 널리 퍼졌다. 1930년대 일본을 통해 우리나라에 들어 온 붕어빵은 1990년대 복고적인 정서를 타고 유행하면서 서민들에게1000원의 행복을 만끽하게 했다.

여기에 한겨울을 따뜻하게 기억할 수 있는 추억과 그리움까지 선사했다. 코로나19로 마음은 답답하고 날씨마저 몸을 움츠리게 하는 요즘이다. 흔하던 붕어빵마저 사라진다면 이 겨울 길거리는 더욱 쓸쓸할 것이다. 가격도 저렴해 가난한 사람들의 끼니가 됐다. 서서히 자취를 감추던 붕어빵이 다시 등장한 건 1997년 외환위기 이후였다.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리어카를 끌고 붕어빵 장사에 뛰어들었다. 붕어빵집은 한때 ‘불황 지표’였다.

하지만 제철 맞은 붕어빵이 요즘 멸종 위기에 놓였다. 흔하던 길거리 노점이 귀해졌다. 물가 상승으로 원재료 가격이 올랐기 때문이다. 밀가루부터 팥, 설탕, 식용유, LPG까지 안 오른 게 없다. 1년 전만 해도 1000원에 서너개였던 붕어빵이 올해는 두개로 줄었다.

그러나 붕어빵 사랑은 식을 줄 모른다. 집 근처에 붕어빵 가게가 있는 ‘붕세권(붕어빵+역세권)’에 살면 남부럽지 않다. 앱을 깔아 붕어빵 노점을 찾아다니고, 지역 커뮤니티에서 정보를 나누기도 한다. 누군가에게 붕어빵은 길거리 간식이 아니라 소울푸드다. 추억이자 그리움, 위로이자 행복이다. 누군가는 붕어빵을 먹으며 오늘 하루를 버텨낼 힘을 얻을 것이다.

여기에 국내 경제 상황도 녹록치 않다. 채소와 과일 등 식료품 원재료와 밀가루, 라면 등 가공식품 가격도 일제히 올랐다. 기름값 상승에 전기료 인상 등 물가폭등으로 생활 전반에 먹구름이 드리웠다. 한파까지 몰아치니 서민의 불안감과 위축심리가 말이 아니다. 고물가 시대에 옛날에 흔한 주전부리 간식이었던 붕어빵의 가격도 크게 올랐다.

윤기 자르르 흐르는 붕어빵틀에서 노릇하게 익어가는 붕어빵 맛은 그대로인데 가격은 자꾸 치솟는 현실이 야속하다. 이러다 붕어빵이 길거리와 골목에서 사라지지는 않을까 우려 된다. 공연한 기우일까? 호기 부리며 편하게 붕어빵 사 먹던 시절이 그립다. 아 옛날이여~. 그러나 돈장사(예대마진)를 해서 먹고사는 은행에 돈이 없다? 붕어빵에 붕어가 없는게 아니라, 붕어빵 점포에 밀가루가 없는 것과 같이 매우 심각한 사안이다.

[전국매일신문] 최재혁 지방부국장
jhchoi@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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