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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席] 검은 토끼 해를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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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席] 검은 토끼 해를 맞아
  • 최재혁 지방부국장
  • 승인 2023.01.19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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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 지방부국장

계묘년은 검은 토끼해로 풍요와 다산을 가져다주는 해라고 한다.지난해의 얼룩진 암운을 말끔히 걷고 새로운 한 해의 장을 열어야 한다. 우리 고전에 그려진 토끼는 지혜의 동물이다. 바다 용궁 충신 별주부의 꾐에 속아 유인된 토끼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기지를 발휘해 목숨을 구했다. 토끼 간이 필요한 용왕에게 ‘간을 산속에 숨겨두고 왔다’는 기지로 죽음을 면한다. 수궁가는 판소리 다섯마당 가운데 하나다.

토끼와 거북을 주인공으로 삼은 재치 있고 풍자적인 소리로 많이 불려진다. 토끼전, 별주부전, 불로초, 토별산수록, 토별가, 토끼타령, 별주부타령 등 제목도 다양하다. 이 작품은 조선 후기의 시대상을 재미있게 풍자했다. 등장인물들의 입담이 구수하고 재미있다. 육지로 토끼를 잡으러가는 별주부는 용궁을 나가면서 오로지 마누라가 걱정이다. 건너 동네에 있는 남생이가 자주 집에 찾아오는 것이 걸린다.

토생전에서 별주부가 온갖 교언영색과 감언이설로 토끼를 꼬드긴 용궁은 화려함의 극치였다. 호박 주춧돌에 산호 기둥, 청강석 기와에 수정 발, 백옥 난간에 순금으로 장식됐다는 별천지였다. 게다가 구름을 타고 이동하며 천도를 먹고 천일주에 장취하여 미인들을 희롱한다니 토생이 혹할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별주부를 따라 죽음의 길, 용궁으로 향한 연유다.

그도 그럴 것이 동삼삭(冬三朔) 백설이 건곤하여 숨어있다 춘삼월 살만하여 세상에 나오면 포수들이 총을 겨눠 일상이 곤고하여 풍류는 꿈에도 생각할 수 없는 고달픈 생이었던 터였으니. 잠시 이성을 잃었으나 특유의 기지로 위기를 모면, 환생할 수 있었으니 다행일 수 밖에.

세밑에 선종한 교황 베네틱토16세는 생전에 ‘진리가 없으면 모든 것이 사라진다’고 해 오늘의 세태를 비추고 있다. 지난 한 해, 우리는 진리와 진실 여부를 떠나 진영에 따라 온갖 독단적 주장으로 점철된 극단적 양극화 현상을 보아왔고 새해를 맞은 지금도 그같은 현상은 계속되고 있으니 영일이 없다.

공자는‘노자안지 소자회지(老子安之 少者懷之)’를 생활신조로 삼았다. ‘노인을 안락하게 하고 젊은이들을 이해하고 품어야 한다’는 말이다. 공자의 신조이지만 이 시대 가장 필요한 가르침으로 와 닿는다. 세대 간의 갈등은 비단 현대 사회만의 문제는 아니다.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담벼락 낙서에도 ‘젊은이는 버릇이 없다’는 글이 있다고 한다.

조선시대 글에도 노년들은 젊은이들의 행태를 걱정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나이를 잊고 친구로 삼는 망년지교(忘年之交)가 유행했다. 아들 같은20대 과거급제자는 60의 나이에 등과한 노인들과도 친구로 지내며 우정을 쌓았다.동석해 술을 마실 때도 서로 존중하고 예의를 갖췄다. 조선시대 덕목을 지닌 인물들의 간찰(편지)을 보면 노소간 상대에 대한 깍듯한 예우를 발견할 수 있다.

기성세대는 젊은세대들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욕을 하거나 화를 내서는 안 된다. 그들을 포용하고 성장한 인격체로 대우해야 한다. 새해는 지난해보다 경제적으로 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예상되고 있다. 이를 이겨내야 할 힘은 정부에게 있으며 국민들도 새로운 각오를 다져야 한다. 죽음 직전에서도 기지로 생명을 구한 토끼의 지혜로 어려움을 극복해야 한다.

대통령은 신년사를 통해 올해를 세계적인 복합적 경제 위기로 진단하고 수출을 통한 위기 극복과 3대 개혁을 차질없이 추진하겠다고 했다. 국민들의 희생과 노력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자유, 인권, 법치도 굳건히 세우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인기 없는 대통령을 자임면서. 토생처럼 곤고한 한 해가 될 것 같다. 토생처럼 위기를 벗어날 기지와 지혜가 계묘년의 덕목이다.

[전국매일신문] 최재혁 지방부국장
jhchoi@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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