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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席] 올 한 해도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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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席] 올 한 해도 애썼다
  • 최재혁 지방부국장
  • 승인 2022.12.29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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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 지방부국장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는 시점에서 이를 마무리하느라 요즘 망,송년회로 일컬어지는 모임에 참석하느라고 발길이 분주한 사람들이 많다. 후다닥 한 해가 지나갔다. 3년 만에 거리두기 없는 연말을 맞았지만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다. 설렘 속 공허함을 채우려는 듯 ‘송년회’라는 명목으로 하나둘 모여 술잔을 기울인다. 알싸한 알코올과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나는 안주들이 가슴 속 허전함을 채워주기를 바라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술잔이 비워질 때마다 깊은 상념도 걷잡을 수 없이 따라온다.

새해에 대한 희망보다 한 해가 끝나간다는 아쉬움이 더 커서일까. 연말은 늘 그랬던 것 같다.해마다 연말이 되면 한차례 홍역을 치르듯 이런저런 모임의 연말 행사를 하게 된다. 등산모임이 그렇고 스크린 골프 모임, mtb자전거 모임, 걷기모임 등 각종 취미생활 모임 여기에 더해 초등학교, 중학교, 대학 동창회 등등… 갖다 붙이기만 하면 그동안 만났던 거의 모든 모임의 한 해를 마감하고 새롭게 한해의 출발을 다지는 모임이 바로 이즈음의 망년 모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바람직한 변화는 소비성 모임에서 온정을 나누는 봉사문화로 송년 분위기가 확산해가고 있다는 현상이다. 직장동료끼리 송년 회식비를 모아 어려운 이웃들에게 연탄을 기부하는 봉사활동이나 홀몸 노인 등 불우 시설을 찾아 노력 봉사를 하는 직장동아리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술로 시작해서 술로 끝나는 비틀비틀 송년 회식 문화에서 운동이나 취미를 통한 문화 활동 중심으로 점점 바꿔 간다고 한다. 직장에서도 소주 한잔을 곁들인 점심으로 송년회식을 대신하면서 소통과 단결을 다짐하는 내실 추구의 송년의 시간으로 활용하는 추세이기도 한다.

망년회 하면 한자 ‘잊을 망’(忘)을 사용하는 것으로, 일본인들이 쓰는 말인데 일제 강점기에 우리나라로 건너와 어느 순간에 마치 우리 고유의 풍습인 양 자리 잡은 것이라고 한다. 일본에서는 1400여 년 전부터 ‘망년(忘年)’ 또는 ‘연망(年忘)’이라고 해서 섣달그믐께 친지들과 어울려 술과 춤으로 흥청대는 풍속이 있었는데 그러한 그들의 ‘망년지교(忘年之交)’라는 풍속에서 글자를 빌려 망년회가 됐다는 것이다.

망년회를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한 해(年)를 깨끗이 잊어버리자는 모임(會)이라는 뜻이다. 요즈음 보통 11월만 들어서면 어느 모임이든 간에 ‘망년회’ 언제 할까 하며 날자 잡기에 바쁘다. 12월에는 장소 잡기도 힘드니 아예 일찌감치 해 두자는 것인데 그러다 보니 12월에는 정작 망년 모임도 뜸한 것이 현실이다. 뭐 그렇게 잊어야 할 일이 많다고 서둘러 한 해가 가기 한 달 전부터 이 해를 잊어버리자고 애를 쓰는지 모를 일이다.

망년회라는 것이 이처럼 일본어에 뿌리를 둔 말이다 보니 저항감을 느껴 송년회로 바꿔 부르는 게 옳다고 한다. 필자는 KBS 아나운서 회에서 바르고 고운 우리말을 알려주는 코너에서 망년회는 일본어의 잔재이니 ‘송년회’로 써야 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하지만 망년회를 송년회로 바꾸어 부른다 해도 연말모임을 너무 의례적이고 서두른다는 느낌은 지워지지 않는다. 뭘 그리 빨리 올해를 보내버리자고 송년회를 서둘러야 하나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매년 지난 한 해를 되돌아볼 때마다 원하는 바를 다 이뤘거나 100% 만족스러운 해는 없었다. 무언가 빠뜨렸거나 마음에 들지 않거나, 어떤 것은 모자라고 어떤 것은 너무 과했다. 예상치 못한 무언가가 불쑥 끼어들어 생각하고 계획했던 완벽한 그림은 언제나 왜곡되거나 다른 형체가 돼버렸다. 인생은 변수투성이인지라 계획대로 되지 않는 걸 이미 알지만 이 기간만큼은 계획처럼 흘러가지 않는 삶에 서글픈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래도 애써 생각한다. 그중에 가장 행복한 기억 두어개 건졌다면 완벽한 한 해는 아닐지라도 소중한 한 해는 될 수 있겠다고. 꼽아 보면 올해도 멋진 기억들, 기념비적인 순간들이 꽤 있을 것이다. 놀라고 웃음 터뜨리고 미소짓고 뿌듯하고 가슴 설레고 ‘아 좋다’ 했던 순간들 말이다. 우리가 몸부림쳐 끝까지 노력하지 않았다면 좋았던 그 순간도, 그 순간을 기억하는 ‘지금’ 이 시간도 없다. 그러니 우선은 이 연말 즐기기로 한다.

‘희망찬 새해, 대망의 한 해가 밝았다’며 호들갑을 떨며 새해를 맞이한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또 빨리 보내기 위해 안달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인상이 들어서다. 망년회니 송년회니 하기 전에 그럼 우리 조상들은 한 해를 어떤 식으로 보냈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매년 지난 한 해를 되돌아볼 때마다 원하는 바를 다 이뤘거나 100% 만족스러운 해는 없었다. 무언가 빠뜨렸거나 마음에 들지 않거나, 어떤 것은 모자라고 어떤 것은 너무 과했다.

예상치 못한 무언가가 불쑥 끼어들어 생각하고 계획했던 완벽한 그림은 언제나 왜곡되거나 다른 형체가 돼버렸다. 인생은 변수투성이인지라 계획대로 되지 않는 걸 이미 알지만 이 기간만큼은 계획처럼 흘러가지 않는 삶에 서글픈 마음이 들기도 한다. 우리 조상들은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누군가에게 빌린 돈이 있다면 깨끗이 갚는 등 금전적 채무 관계는 물론 한 해를 보내며 다른 사람에게 혹시 폐를 끼치거나 은혜를 입었다면 그러한 마음의 빚까지도 모두 개운하게 청산하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섣달그믐날이면 수세(守歲)라고 해서 방을 비롯해 마루, 부엌, 외양간, 마구간은 물론 측간까지 곳곳에 불을 밝히고 액운을 막고 집안이 두루두 잘 되기를 빌기 위해 조왕신(부뚜막신)의 하강을 기다리며 밤을 새우는 풍습도 있었다고 한다. 어떻게 생각하면 우리 전통의 풍속은 한 해를 보내며 떠들썩하게 웃고 즐기고 춤추며 모든 것을 잊어버리기 위해 애쓰기보다는 한 해 동안의 자신의 부족했던 부분 허물이나 과오를 들춰내 반성하고 깨끗이 정리한 뒤 새로운 한 해를 맞기 위한 성스러운 자기성찰의 시간을 보내려는 성격이 짙었던 것 같다.

아쉬움은 새해 희망과 소망으로 남기고 한 해 동안 어려움과 고비를 잘 이겨낸 우리에게 박수를 보내자. 덧없이 흘러간 시간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감사하며 이루지 못함에 분노하지 말고 지금까지 이룸에 감사하자. 분노와 원망으로 황폐화되고 파편화된 한국인의 집단 기억에 결여돼 있는 ‘고마움의 기억’을 찾아가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해보며 부동심의 굳은 마음으로 사로(思路)의 길을 가자. 마음이 흔들리면 자신감도 없어지고 주체적인 삶을 살 수가 없다.

책 속의 길은 작가의 길이지 내 길이 아니다. 내 길을 찾는데 도움을 줄 뿐이다. 마지막까지 내 자신을 신뢰하고 사랑하며 살다 가자. 빳빳한 새 달력을 벽에 걸며 내년에는 좀 더 사랑하며 살아야지~ 얼마 가지 못할 다짐을 해보며 세월을 쓰다듬어 본다. 이제 남은 시간 동안 후회 없는 삶을 위해 많이 베풀고 사랑하고, 즐겁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전국매일신문] 최재혁 지방부국장
jhchoi@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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