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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席] 결자해지(結者解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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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席] 결자해지(結者解之)
  • 최재혁 지방부국장
  • 승인 2023.03.16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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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 지방부국장

조선 인조 때 학자 홍만종이 지은 문학평론집 ‘순오지’에 결자해지(結者解之)란 말을 썼는데 말인즉, ‘일은 매듭을 맺은 사람이 풀고 처음 시작한 사람이 끝도 책임 져야 한다’는 말이다. 불가에서도 인과응보(因果應報)라 하여 자신이 저지른 업을 자신이 해결하지 않으면 다음 생으로 이어지며 자칫 옆으로 빠지면 자승자박(自繩自縛)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경기도청 비서실장 출신 전 모 씨의 극단적 선택에 대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반응은 여기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다.“검찰의 미친 칼질” 탓이라는 그와 민주당의 강변에 두려움마저 느낀다는 이가 적지 않다. 전 씨는 유서에서 이 대표에 대한 깊은 서운함을 토로한 것으로 보인다. “측근을 진정성 있게 관리해 달라” “함께 일한 사람들의 희생이 더 이상 없어야 한다”라고 썼다. “검찰 수사와 관련해 본인의 책임을 알고 있지 않느냐”는 대목도 있다고 한다.

어디 전 씨뿐이랴. 이 대표 주변 인물 다섯명이 극단적 선택을 한 데는 그가 연루된 사건에 심각한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게 상식적이다. 특정인과 관련해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 연거푸 벌어진 것은 결코 괴담이설(怪談異說)로 치부할 일이 아니다.이 대표를 둘러싼 각종 의혹과 관련, 이 대표 주변 인물의 극단적 선택이 꼬리를 물고 있다.

이 대표 주변에서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지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그런데 이런 비극적인 죽음이 이 대표의 측근에서 잇따르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전씨를 포함해 지금까지 5명에 이르고 있다.유한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사업본부장은 2021년 12월 검찰 수사를 받던 중 아파트에서 떨어져 숨진 채 발견됐다.

그 직후 대장동 개발의 핵심 실무자였던 김문기 전 성남도개공 개발사업1처장도 극단적 선택을 했다.또 지난해 1월에는 이 대표의 과거 선거법 위반 사건 관련 변호사비 대납 의혹을 제기했던 이모씨도 모텔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또 7월에는 이 대표의 아내 김혜경씨의 ‘경기도 법인카드 유용 의혹’에 연루된 배모씨의 지인인 40대 남성도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너무나 비극적이고, 너무나 섬뜩한 일이다.잇단 극단적 선택에 대해선 ‘정치적 해석’이 분분하다.그것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이들은 진영에 따라 극명하게 반대의 입장이다.아전인수 격으로 넘쳐나는 말들은 자기 입장만 강변하며 더욱 격해지고 있다.국민의힘은 일제히 이 대표에게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김기현 대표는 최근 국회에서 열린 정책 의원총회 후 기자들과 만나 “이 대표를 둘러싸고 있는 죽음의 그림자가 연속돼 섬뜩한 느낌을 금할 수 없다”며 “이 대표의 관계인이라고 할 수 있는 분들이 계속해서 유명을 달리한다는 것은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결과”라고 말했다.그는 그러면서 “민주당 대표로서 직무 수행이 적합한 지에 대한 심사숙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의 반론도 나왔다.이 대표는 같은 날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검찰의 과도한 압박수사 때문에 생긴 일이다. 검찰의 이 미친 칼질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며 ‘검찰 책임론’을 강하게 제기했다.그는 “저를 둘러싼 모든 사람들이, 저와 인연 맺었던 모든 사람들이 수사 대상이 되고 있고, 그야말로 본인뿐만 아니라 그 주변까지 다시 2차, 3차로 먼지 털 듯이 탈탈 털리고 있다”며 “검찰이 이분을 수사한 일이 없다고 선을 그었는데, 반복적으로 검찰 수사를 받았고, 검찰의 압박수사에 매우 힘들어했다”고 말했다.

전씨의 죽음을 고리로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는 여권을 향해선 “아무리 비정한 정치라고 하지만, 이 억울한 죽음을 두고 정치 도구 활용하지 말라”고 쏘아붙였다. 일단 가족들은 유서를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유서가 공개된다면 이 대표든 검찰이든 그 내용에 따라 책임론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이 대표는 더 이상 불체포특권에 기대지 말고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는 자세로 검찰 수사와 재판에 성실하게 응해야 한다.

의혹 관련자들의 정신적·사법적 부담을 덜어줘 더 이상의 극단적 선택을 막는 것이 자신과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에 대한 인간적 도리다. 수사 당국도 이 대표 관련 의혹을 빨리 규명해 비극을 막아야 한다.어쩌면 이 대표는 일련의 일은 대선에서 0.74%의 표를 더 받았다면 없었을 것이라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국회의원 불체포특권과 극성 팬덤에 기대어 책임을 회피하려 해선 다음 대선도 기하기 어렵다.

법원에서 떳떳하게 시시비비를 가리는 게 옳다. 그가 자신의 의혹을 “검찰의 소설”이라고 수차 주장한 터라 문득 어리석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파탄을 부르기도 하고 생명을 구하기도 하는 인간의 욕망을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써 오히려 우리 정치가 환골탈태할 계기를 제공하는 게 아닌가 하는 망상이다.

‘군주론’으로 유명한 마키아벨리는 임종 직전 문병 온 친구들에게 자신의 꿈 얘기를 들려줬다고 한다. 병약하고 가난한 무리에 이어 고상한 옷차림으로 정치를 논하는 다른 무리를 만났다는 내용이다. 후자(後者)에는 플라톤, 플루타르코스도 있었다.그들이 각각 천국과 지옥으로 가는 길이라고 밝힌 뒤 사라지자 신비한 목소리가 “너는 어느 무리와 함께 있고 싶으냐?”고 물었다. 마키아벨리의 대답이 인상적이다.

“축복받은 이들과 천국에서 심심하게 지내기보다는 고귀한 인물들과 지옥에 있고 싶습니다.” 이 이야기를 두고선 후대의 위작이란 견해가 적지 않다. 그러나 위대한 철학자들이 “신의 뜻에 어긋나는 지식을 추구했다”는 이유로 지옥에 떨어진다는 상상은 마키아벨리답다. 더욱이 조국의 부흥을 위해서라면 영원히 고통받는다 해도 기꺼이 감수하겠다니….

마키아벨리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지만 현실에서 이런 결기를 갖춘 정치인은 매우 드물다. 외려 목표 달성을 위해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권모술수의 대가들만 판을 친다. 세상을 바꾸려 애쓰는 개혁가인 척해도 알고 보면 구린내가 진동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실제로 최근 한 언론사가 MZ세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회 또는 정치인을 신뢰한다는 응답은 5.8%에 그쳤다. 정치 선진국이란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국 갤럽의 지난해 국민 인식 조사에서 정치인(연방의원)은 정직성과 윤리성이 가장 낮게 나타난 직업이었다. 정치 혐오는 정치인들의 자업자득이다.

[전국매일신문] 최재혁 지방부국장
jhchoi@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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