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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席] 난방비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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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席] 난방비 논란
  • 최재혁 지방부국장
  • 승인 2023.02.09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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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 지방부국장

‘난방비 폭탄’을 맞았다는 하소연이 점점 커지고 있다. 난방용 에너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LNG(액화천연가스) 국제 가격이 작년 한 해 동안 128% 오르면서 4차례에 걸쳐 주택용 가스 요금 등을 약 38% 올린 것이 겨울철 한꺼번에 가계 부담으로 덮쳐 왔다. 산업부는 올 1분기엔 가스 요금을 동결했지만 2분기 이후 추가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한다. 지난해 시작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요동친 천연가스 가격 인상의 여파가 지금에서야 우리의 피부에 와닿고 있을 뿐이다.

난방비를 비롯한 에너지 비용 급등은 포퓰리즘 대가를 한꺼번에 치르는 것이다. LNG 가격은 문재인 정부 때인 2020년 말부터 1년 새 3배 가까이 급등했다. 하지만 문 정부는 주택용 가스 요금을 2020년 7월 11.2% 인하한 뒤 1년 9개월간 동결하다가 대통령 선거 이후인 작년 4월에야 소폭 인상했다. 이로 인해 LNG 공급을 도맡은 한국가스공사는 지난해 8조8000억원의 영업 손실을 내 더 이상 못 버틸 지경에 내몰렸다.

한국전력 역시 문 정부가 탈원전 비판을 피하려 전기 요금 인상을 미뤄 지난해 30조원의 천문학적 적자를 냈고 올해도 18조원 적자가 예상된다. 인기 없는 정책을 미루고 미루다 결국 이제 와서 한꺼번에 비용을 치르게 된 것이다. 이 포퓰리즘의 책임을 져야 할 민주당은 거꾸로 가고 있다. “난방비 고지서를 받아든 국민이 경악했다”면서 안 그래도 적자인 예산을 또 늘려 15만~45만원을 뿌리겠다고 한다. 에너지 가격 체계와 공기업 경영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장본인이 반성은커녕 또 현금 살포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러시아가 유럽을 향한 파이프라인을 잠갔다. 불안해진 유럽은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부랴부랴 다른 공급처를 찾았고, 그 과정에서 시장이 크게 교란됐다. 내려간 공급에 비해 수요가 폭증하면서 가격이 요동친 것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서유럽은 올겨울 그리 춥지 않으나, 한번 흔들린 시장의 충격은 우리에게도 영향을 주고 있다. 그것이 지금 떨어진 ‘난방비 폭탄’의 실체다. 수요와 공급의 원리는 경제학 교과서에서 매끈한 그래프 하나로 정리된다. 하지만 현실은 울퉁불퉁하다. 균형을 찾는 과정에는 고통이 따른다. 피할 수 없지만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정상적인 정부가 펼치는 상식적인 정책이라 할 수 있다.

얼마 전 한 아파트에 사는 어르신에게서 평소에 3만원 정도 나오던 가스요금이 10만원이 넘게 나왔다고 하소연하는 전화를 받았다. 이 분은 난방을 그리 많이 하지도 않았는데 터무니없이 많이 나왔다며 나라에서 형편이 어려운 노인들에게 난방비를 지원한다고 하니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작은 아파트에 홀로 사시는 이 어르신은 경제활동을 하지 않아 기초연금과 서울에 있는 자식들이 송금해 주는 용돈이 수입의 전부다. 그 돈으로 아파트 관리비와 공과금을 내고 생활비로 쓰고 나면 남는 돈이 거의 없을 정도로 빠듯하게 살고 있다.

그런데 가스요금이 3배 넘게 나왔으니 얼마 안 되는 생활비마저 줄여야 하는 딱한 처지에 놓인 것이다. 그렇다고 시베리아 한파가 엄습한 올겨울에 보일러를 켜지 않고 냉수로 머리 감고 샤워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가스요금이 몇만원 더 나온 것 갖고 웬 호들갑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취약계층에겐 큰 부담이다. 특히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노인가구들에겐 생존이 걸린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우리나라의 노인빈곤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다는 것을 염두에 두자.

이 어르신뿐만 아니라 취약계층·서민 대부분이 연초에 어안이 벙벙할 정도로 많이 부과된 가스요금 고지서를 보고 한숨을 쉬고 있다. 정부가 가스요금을 올린 것은 이해가 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액화천연가스(LNG) 수입비용이 급증해 9조원까지 불어난 한국가스공사의 미수금(영업손실)을 해소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조치다. 하지만 해외 가스 도입가격이 올랐으니 그 인상분만큼 국내 가격을 올려야 한다는 경제논리로 지난해 38.5%나 급격하게 올려야 했는지는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가스요금, 전기료 등 공공요금은 서민생활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인상 요인이 발생하더라도 충분한 설명·홍보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한 뒤 파급효과를 면밀히 검토해 인상폭, 인상시기 등을 결정해야 하는데 이번 가스요금 인상은 그렇지 못한 측면이 있어 보인다. 평소보다 가스요금이 2~4배 많이 부과되면서 ‘난방비 폭탄’이라는 비난 여론이 비등해지자 허둥지둥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대책을 내놓은 모양새를 보면 그러하다. 정부 관계자도 가스요금이 이렇게 많이 부과될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게다가 공공요금 인상은 물가 상승을 수반한다. 물가가 오르면 소비심리가 위축돼 경기침체가 오고 국가경제 전체에 악영향을 주게 된다. 가스요금에 이어 전기료, 교통비, 상·하수도 등 공공요금이 줄줄 인상됐거나 예고돼 있는 상황이다. 이렇게 한꺼번에 공공요금을 올리면 물가는 고공행진을 할 수밖에 없다. 벌써부터 식음료품 등 장바구니 물가가 치솟고 있고, 식당과 목욕탕 등 서비스업종도 요금을 올릴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이번 난방비 폭탄은 민생에 대한 몰이해와 배려 부족, 즉흥적이고 근시안적 정책 결정의 결과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지난달 30일 “중산층 서민의 난방비 부담을 경감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포퓰리즘 유혹을 떨치지 못한 모양새다. 이래서야 어찌 국민의 자발적인 에너지 절약을 바라고 국가 경쟁력 강화를 꾀하겠나. 이런 와중에 행정부를 견제하면서 국민과 함께 새 길을 찾아야 할 입법부는 낯뜨거운 공방이나 전개한다. 여야 눈에는 난방비 폭탄이 한낱 정쟁의 불쏘시개로만 보이는 것인가.

제정신이 있다면 전 세계에서 세 번째로 LNG를 많이 수입하는 국가 현실을 직시하면서, 구조적 대안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할 것 아닌가. 국민 혈세를 얼마나 퍼주느냐를 놓고 입씨름을 벌이기보다는 국가와 국민의 미래를 생각하면서 에너지 문제를 들여다봐야 하는 것 아닌가. 정치이 그렇게 할 일은 안 하고 허튼짓만 골라 하니 국민이 혀를 차는 것이다.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荷政猛於虎)’고 한다. 민생 정책 결정 시 새기고 또 새겨야 할 말이다.

[전국매일신문] 최재혁 지방부국장
jhchoi@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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