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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席] 분노하는 국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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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席] 분노하는 국민들
  • 최재혁 지방부국장
  • 승인 2023.02.23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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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 지방부국장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제13차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주재하면서 민생 안정을 위해 시급한 대책의 하나로 금융업계에 고통분담을 요구했다. 이 전에도 윤 대통령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고금리로 인해 국민의 고통이 크다”며 “은행의 돈 잔치로 국민의 위화감이 생기지 않도록 관련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이는 고금리와 고물가, 폭등한 에너지 비용에 시달리는 서민의 고통을 외면한 듯한 시중은행들의 행태에 대해 국민 시선이 곱지 않은 것을 의식한 조치로 보인다.

은행권이 고금리 시기에 이자 장사로 가만히 앉아 손쉽게 막대한 수익을 올리며 임직원 성과급·퇴직금 지급 잔치를 벌이는 데 대해 부정적인 여론이 들끓고 있어서다.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의 지난해 성과급 총액은 무려 1조 3823억 원으로 전년에 비해 36%나 급증했다. 모 은행 임원의 성과급은 16억 원에 달한다. 이뿐만 아니다. 5대 시중은행은 지난해 말부터 퇴직한 직원 2200여 명에게 1인당 평균 6억~7억 원의 퇴직금을 지급한 것으로 집계됐다.

10억 원 이상을 챙긴 퇴직자들도 있다고 한다. 고금리 여파로 서민층 가계는 크게 불어난 이자 부담에 허덕이고, 이를 견디지 못해 가게 문을 닫는 자영업자가 속출하는 냉혹한 현실과 딴판인 세상이다. 금융권이 국민의 고혈을 짜낸 돈으로 제 배만 채운다는 비난까지 나오는 이유다.이런 상황에서 한쪽에선 초상집 분위기인데 다른 한쪽에서는 잔치를 벌이는 곳이 있다.

지난달 9일 경기 성남의 한 다가구주택에서 빚 독촉과 생고에 시달리던 70대 어머니와 40대 딸이 숨진 채 발견됐다. 모녀는 ‘장사를 하면서 빚이 많아졌다.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는 유서를 남긴 채 스스로 삶을 내려놓았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최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이 모녀 사례를 언급하며 “열심히 살아보려 했지만, 버거운 삶의 무게가 그들을 영영 짓눌러 버렸다”고 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장기화에 따른 고물가와 고금리, 고환율의 3중고 여파로 서민을 비롯한 자영업자, 소상공인, 중소기업들이 허리띠를 졸라매며 씀씀이를 줄이고 있다. 살기 위해 열심히 일하지만 버티는 수준에 가깝다고 아우성이다. 식료품을 비롯해 난방비 등 생활물가가 치솟으면서 차가 있어도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점심값을 줄이기 위해 도시락을 싸는 경우도 주변에서 자주 목격된다.

지난해 은행 대출을 통해 집을 마련하거나 분양을 받은 사람들은 막대한 대출 이자가 월급을 깎으면서 일상을 짓누르고 있다. 코로나19로 제대로 된 영업과 수출을 하지 못한 자영업자와 중소기업 역시 임대료와 인건비 지급 등을 대출로 돌려막는 사이 이자 폭탄에 깊은 한숨만 내쉬고 있다. 이때 날아든 난방비 고지서는 울고 싶은데 뺨 때린 격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1월 전기요금은 지난해 같은 달과 비교해 29.5% 상승했다.

전기료 물가 상승폭이 30%를 상회한 시기는 1981년 1월(36.6%)밖에 없었다. 도시가스도 1년 전보다 36.2% 급등했으며, 지역 난방비도 34%나 올랐다. 도시가스 요금과 전기요금이 급격하게 오르면서 한 푼이라도 난방비를 아껴보려는 서민들은 고지서를 보기가 두려울 정도고, 일정 수준 이상 온도를 계속 유지해야 하는 숙박업과 목욕탕업, 화훼농가, 세탁소 등 자영업자들은 예상치를 뛰어넘는 비용에 죽을 맛이다.

국제 유가가 급등하면서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정유 4사는 14조1762억원이라는 역대 최대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이런 호실적을 바탕으로 현대오일뱅크, GS칼텍스는 각각 월 기본급의 1000%, 기본 연봉의 50%를 성과급으로 지급했다. 고금리를 틈타 큰돈을 번 금융권도 성과급 잔치를 벌이고 있다. 0%대였던 기준금리가 3%대까지 치솟으면서 대출금리로 이자 수익을 거둔 결과다.

한국전기공사와 한국가스공사도 성과급에 연봉 잔치를 하고 있다. 1억원 이상 연봉을 수령하고 있는 직원이 한전은 3589명(15.2%), 가스공사는 1415명(34.2%)로 조사됐다. 국민이 이들에 대해 견디기 힘들어하며 분노하는 이유는 공공재 성격의 재화를 취급한다면서 과점 형태를 고집하고, 막상 위기에 처하면 손을(세금·제도) 벌리다, 좋은 성과가 나면 그들만의 잔치를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정유업계는 지난해 정부의 유류세 인하 조치로 안정된 판매를 보장받았고, 품질검사 수수료 유예, 수입판매부과금 징수 유예 등의 혜택을 누렸다. 금융권은 외환위기 당시 천문학적인 공적자금이 투입됐다. 한전과 가스공사는 만성 적자 때문에 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며 책임을 국민들에게 돌렸다. 성과급과 억대 연봉 잔치를 벌이는 이들의 행태를 두고 사지에 몰린 서민들의 시선이 고울 리 없다. 모럴해저드, 분위기 파악도 못하는 이기주의 행동으로밖에 해석이 안 된다.

당국은 은행의 예대금리 산정 및 운용 과정을 철저히 감독해 은행의 부당한 이자 이익을 줄여야 한다. 부동산 폭등 시기에 빚을 내 집을 산 2030세대 ‘영끌족’이나 코로나19 사태를 대출로 버텨온 영세 자영업자들은 이자 부담에 하루하루 피가 마르고 있다. 은행은 고금리 상황에서 사상 최대의 수익을 거둔 것을 자기 성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은행도 주주가 있는 민간 기업이다.

그러나 금리 상승기에 엄청난 수익을 거둔 은행들이 ‘돈잔치’를 벌이고 있다.외환위기와 금융위기 당시 벼랑에 놓인 은행들을 살린 것은 다름 아닌 국민 세금으로 조성된 공적자금이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금융회사는 일반 기업들과 달리 자신들의 경영상 리스크를 시장이나 고객에게 전가하기 쉬운 구조를 갖고 있다. 금융사들의 과도한 이익추구가 시장을 왜곡시키거나 위기에 빠뜨리지 않도록 당국의 철저한 감시와 고강도 대책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

[전국매일신문] 최재혁 지방부국장
jhchoi@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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