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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席] 3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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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席] 3월이다
  • 최재혁 지방부국장
  • 승인 2023.03.02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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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 지방부국장

완연한 봄의 기운이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것과는 달리 각종 미디어를 통해 들려오는 소식들은 아직도 동장군의 기세가 한창인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절기상 봄의 시작을 알리는 것은 입춘이다. 올해 입춘은 2월 4일이었다. 하지만 이때를 봄의 시작으로 보기에는 이른 감이 있다. 봄이라고 하기에는 기온이 너무 낮고, 일부 지방에는 폭설까지도 내리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봄의 시작을 언제로 생각할까? 많은 이들이 만물이 깨어나는 경칩과 함께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을 봄의 시작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여러 가지 사건 사고들과 참사, 우리의 생계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전기세와 가스료 인상, 거기에 튀르키예의 지진으로 인한 많은 인명피해, 국민들의 삶의 질과는 무관하게 보이는 듯한 정치인들의 논쟁. 과연 ‘이 땅에 봄이 올 수 있는 것인가?’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게 만든다.

그렇지만 좋지 않은 소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알려지지만 않았을 뿐이지 우리 주위에는 이 세상을 살아갈 맛이 나게 하는 숨은 주역들이 너무도 많고 그들을 통해 이루어지는 어둠을 밝히는 빛과 소금과 같은 일들이 많이 있다. 다만 우리는 그것을 알아채지 못하고 들을 수 없을 뿐이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바로 숨은 주역들과 우리가 만들어 가는 행복한 드라마일 것이다.그러나 계절의 변화는 어김없이 왔다. 우선 바람이 다르고 햇빛이 다르다.

3월. 바라봄의 시작과 기다림이 끝나는 계절, 봄이 시작된다. 봄은 바라보다에서 파생됐다고 한다. 어원이 아니더라도 봄만큼 싱싱하고 풋풋한 우리말이 또 있을까. 단어의 함축성과 의미에 더하고 모자람 없이 봄은 우리 곁에 살포시 소리 없이 다가온다. 새색시나 봄처녀처럼. 두 귀를 할퀴면서 정신이 번쩍 들도록 만드는 요즘 같은 시기도 있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음산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역시 봄이 오면 모든 꽃으로부터 영원하고 즐거운 선물을 받게 된다”라고 헤르만 헤세는 말했다.

낙엽귀근(落葉歸根)이란 말이 있다. 잎이 떨어지면 뿌리로 돌아간다. 뿌리로 돌아가서는 썩어서 새로운 생명력을 잉태하게 한다. 만물은 태어나고 자라서 번창하지만 언젠가는 시들고 낙하 낙엽하여 뿌리로 돌아간다. 물은 바다로 흘러가고 초목은 대지로 그러면서 다시 생명을 얻고 다시 잃고 순환을 되풀이 하면서 유유히 영원 속으로 흘러간다.

이 생명의 흐름, 다시 그 봄을 맞는다. “숲의 생활사”에서 차윤정은 이렇게 말한다. “봄바람은 사람을 바람나게 한다. 봄바람은 비단결처럼 부드럽다. 솜털을 간질이는 듯 몸에 감기는 미미한 감촉, 겨울 바람의 투박스러움을 한 번 상기해보라. 마른 대지를 날아온 바람은 대지의 따스한 열을 받아 부드럽게 부풀어 오르면서 공중으로 떠오른다. 봄이면 사람의 마음이 설레는 것도 이 상승기류 때문이다. 봄바람은 단순한 설렘이 아니다.

그러니 억누를 길도 없으며, 억누를 이유도 없다. 사람도 자연이기에, 이 자연의 변화는 자연의 일부인 사람에게도 변화를 준다. 겨울 내 언 땅에 봄 비가 내리고 쌓인 눈이 녹는다. 생명체를 구성하는 물이 깨어나야 생명들도 비로소 깨어 날 수 있다. 나무들은 물이 오르고 앙상하게 메말랐던 가지에 푸른 물이 오른다. 벌써 생명은 시작했다. 단단하게 언 땅도 부드러워진다. 그 위에 따스한 봄빛이 내린다.

만물은 자연의 제일 축복인 빛으로 깨어난다. 이름 모를 들꽃과 풀들, 개나리, 진달래, 매화, 동백, 산수유가 경쟁적으로 피어나기 시작한다. “봄이 오는 것을 어떻게 아나요? 들꽃이 피어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지요” 노랫말이 생각난다. 봄은 겨울을 넘기고 사람들에게도 봄은 희망이다. 봄이 오는 길목에 서면 추운 지난 겨울의 움추림과 부자유함이 깨끗이 씻겨 간다. 그래서 봄은 자연이 만물에게 생명을 주듯 우리에게도 새 생명, 새 도약의 기회가 다가 오는 것이다.

이해인 수녀의 글귀가 있다. “봄과 같은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 생각해봅니다. 그는 아마도 늘 희망하는 사람, 기뻐하는 사람, 친절한 사람, 명랑한 사람, 온유한 사람,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 고마워할 줄 아는 사람,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과 용기를 새롭히며 나아가는 사람일 것입니다” 봄은 기다림이 끝나는 지점에서 만난다. 새싹이 언 땅을 힘차게 박차고 나오듯 봄은 겨울이라는 긴 시간을 기다리고 견뎌낸 선물이다. 그 기다림은 열매가 맺는 여름이나 가을걷이하는 가을의 시간과는 다르다.

어감이나 느낌까지도. 낡은 기와집 담장을 녹색으로 곱게 입힌 이끼를 닮은 고통의 시간, 겨울을 지나 만물이 피어나는 시간이길 바라는 기대의 계절, 언 땅을 뚫고 나오는 모든 생물은 그래서 위대하다. 매년 오는 봄이고 매년 피는 벚꽃인데, 이 순간을 자꾸만 절실히 기다리게 된다. 어쩌면, 추운 마음을 녹일 핑계로 자꾸만 봄을 찾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세상이 정말 많이 따뜻해졌다. 내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부디 따뜻한 시간이길 바란다. 보다 따뜻한 세상으로 만들어나가는 봄의 전령사가 되어 한 해를 같이 살아가 보기를 바라며 독자 여러분들이 싱그러운 봄날을 만끽하시길 기원한다.

[전국매일신문] 최재혁 지방부국장
jhchoi@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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