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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197] ‘5·18 정신 헌법전문 수록’은 립서비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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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197] ‘5·18 정신 헌법전문 수록’은 립서비스인가 
  • 서길원 大記者
  • 승인 2023.05.17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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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길원 大記者

대통령과 국회 모두 5·18 정신의 헌법전문 수록 의지를 드러내고 있는 만큼, 그 의지표명이 ‘립서비스’가 아니라면 당장 '원포인트' 개헌이라도 못 할 게 없다.

5·18 43주기다. 광주 5·18 국립묘지 가는 길에 이팝나무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아직도 미완성인 5·18의 처연함이 백지장처럼 하얀 꽃에 투영돼 괜시리 서럽다.

한 세기가 넘는 많은 세월이 흘렀다. 광주를 피로 물들였던 발포 명령자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대통령까지 지낸 5·18 가해 세력의 우두머리는 끝내 입 다물고 세상을 떠났다. 그를 추종하는 무리는 여전히 남아 이 땅의 민주주의에 오물과 악취를 뿌리고 있다. 

그렇다고 가해자와 그 추종 세력만 나무랄 수도 없다. 개인의 영달을 위해 광주를 팔고 5·18을 파는 세력도 여전하다. 5·18을 독점하며, 5·18로 부귀영화를 누리는 무리는 더 추하고 간악하다. 일부라는 단서를 달더라도 권력과 부귀의 수단이 되어버린 5·18이 43년 전 그날만큼 오늘도 슬프다. 

그래도, 비틀거리더라도 어제보다는 오늘이, 오늘보다는 내일의 발걸음이 더 나으리라 믿고 싸워서 여기까지 온 5·18 43주년이다. 보라, 한때는 노래 한 곡 갖고도 시비를 걸었던 그렇게 치졸하고 가벼운 정권도 있었다. 5·18의 주제곡인 ‘님을 위한 행진곡’의 합창마저 금지했던 그런 정권도 있었다. 합창은 안되고 제창은 된다는 해괴한 권력의 해괴한 주장도 있었고, 내일의 적들은 그 해괴함에 추임새를 넣어 반겼다.

올 5·18 43주년은 ‘5·18 정신 헌법전문 수록’ 문제가 최대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어느 종교집회에서 국민의힘 최고위원이 ‘5·18 정신 헌법전문 수록’에 대해 대통령의 ‘표를 얻기 위한 립서비스’라고 단정해 버렸기에 더욱 그렇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대통령에 당선된 뒤에도 5·18 정신을 헌법전문에 수록하겠다는 의지를 수시로 밝혀왔다. 2021년 11월 후보 신분으로 5·18민주묘지를 찾아 "5·18 정신이라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정신이고, 우리 헌법 가치를 지킨 정신이므로 당연히 개헌 때 헌법전문에 반드시 올라가야 한다고 늘 주장해 왔다. 대통령 후보가 되기 전부터의 신념이라는 것이다.

또 당선 직후 5·18 제42주년 기념사에서 "자유민주주의를 피로써 지켜낸 오월 정신은 바로 국민 통합의 주춧돌이다"며 5·18 정신을 재차 강조했다. 그러나 개헌 논의가 진전을 이루지 못하면서 윤 대통령 임기 내 헌법전문 수록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5·18국제자유민주인권연구원 설립 공약도 짐 떠밀듯 5·18기념재단에 맡겨버리면서 '공약 축소' 논란이 일고 있다. 그러는 사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이 해당 공약이 표를 얻기 위한 '립서비스'였다는 발언이 나왔다.

민주당과 5·18단체 등을 중심으로 한 각계각층의 전국민적 비판을 받았지만 보수정권만 그러한가. 아니다. 광주를 뿌리로 둔 민주당의 문재인 정부는 아예 허언으로 끝났다. 문재인 대통령은 '5·18 정신의 헌법전문 수록'을 공식 공약집에 담았고,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때마다 약속을 지키겠다고 했지만 결국 ‘립서비스’에 그쳤다. 더군다나 민주당이 거대 여당으로, 개헌을 위한 적기었음에도 공약 이행에 실패했다. 민주당 또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보수 정권보다 오히려 더 비판받아 마땅하다.

개헌은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국회 차원에서도 가능하기 때문에 다수 의석을 가진 민주당이 분명한 의지만 있었다면 ‘립서비스’얘기는 듣지 않아도 됐다. 대통령과 국회 모두 5·18 정신의 헌법전문 수록 의지를 드러내고 있는 만큼, 그 의지표명이 ‘립서비스’가 아니라면 당장 '원포인트' 개헌이라도 못 할 게 없다. 강기정 광주시장이 "5·18 정신을 헌법전문에 넣는 것은 절차만 남았을 뿐 여야, 진보·보수, 호남·영남, 대통령 후보들 모두 동의한 사안"이라며 '5·18 정신'을 헌법전문에 수록하기 위한 '원포인트' 개헌을 국회와 정부 모두에 요청한 것도 이런 맥락의 연장선이다. 

헌법전문은 헌법 본문의 각 조항들을 지배하는 근본원리이자 입법·사법·행정의 모든 국가기관의 작용 및 국민의 헌법 생활에 관한 궁극적 기준이 되는 '헌법의 헌법'이라고 할 수 있다. 헌법전문에 5·18이 수록된다는 것은 5·18민주화운동의 정신에 입각해서 법률 등 다른 하위규범들이 만들어지며, 동시에 기존에 만들어져 있는 법률 등 규범의 해석도 5·18민주화운동의 정신에 따라 이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때문에 ‘5·18 정신 헌법전문 수록’은 5·18민주화운동의 경험과 의미를 국가이념과 정책의 투입 및 산출로 이어갈 수 있을 뿐만아니라 5·18정신의 왜곡, 비방 행위도 막을 수 있다. 

5·18민주화운동은 대한민국이라는 정치공동체가 앞으로 지향하고 추구해야 할 이념적 가치와 원리이자 미래 민주주의 문제기도 하다. 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은 광주뿐만 아니라, 지난 대선에서 주요 대선후보들의 공통된 대선공약이다. 정치는 신념의 산물이다. 대통령 후보의 공약이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가 되어서는 안된다. 

윤 대통령은 누가 뭐라 해도 인기에 연연치 않고 자신의 신념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장점이자 단점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오늘 아침, 43년 전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바쳐 투쟁했던 분들을 기억하며, 윤 대통령이 ‘늘 주장해 왔던’ 5·18 정신에 대해 뭐라고 할지 궁금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전국매일신문] 서길원 大記者
sgw3131@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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