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매일신문
지면보기
 표지이미지
지방시대
지면보기
 표지이미지
[최재혁의 데스크席] 휴가
상태바
[최재혁의 데스크席] 휴가
  • 최재혁 지방부국장
  • 승인 2023.09.07 13: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재혁 지방부국장

벌써 가을이 다 온 듯하다. 낮 기온이 전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다. 살인적인 무더위를 한풀 꺾었다. 낮 최고기온이 30도 아래로 내려가고, 밤 기온은 20도 언저리에 머문다. 7월과 8월 내내 낮에는 35도를 웃도는 폭염, 밤에는 25도가 넘는 열대야였다. 더위가 역대급이었다. 에어컨을 24시간 가동해야만 가까스로 하루를 겨우 넘길 수 있는 여름이었다. 

이번 휴가는 휴가철의 절정기인 8월 10일을 전후해태풍 ‘카눈’이 한반도를 통과하는 바람에 맥이 빠진 측면이 조금 있었다. 지면을 빌어 태풍으로 피해를 입은 분들이 빨리 일상을 회복하길 기원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왜 한국의 휴가철은 여름일까?’라는 의문이 든다. 유럽과 미국의 경우 여름 휴가도 있지만, 겨울인 연말연시도 일종의 휴가철이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 ‘휴가-여름’이라는 일종의 고정관념이 있다. 물론 예전보다 회사의 복지가 늘어난 현대 사회에서는 (각각의 재직 연수에 따라 다르지만) 여름 휴가 외에도 다양한 시기에 휴가를 사용할 수 있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여름 휴가가 대세처럼 보인다. 휴가 얘기를 하면 의외로 ‘역법(曆法)’, 즉 하늘의 주기적 현상을 기준으로 해 한 해를 비롯한 시간의 단위를 정하는 방법의 변화상을 알 수 있다.

폭염이건 폭우건 바캉스의 계절은 어김없이 지났다. 바캉스는 1936년 프랑스에서 노동자 복지 향상을 위한 타협안 중 하나로 시작됐다. 주 5일, 40시간 근무, 연간 2주의 유급휴가 등을 의무화한 소위 ‘마티농 합의’가 시발점인 셈이다. 그 후 휴가기간은 계속 늘어 80년대 미테랑 대통령은 5주로 휴가기간을 늘려놓았다. 프랑스 사람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1년에 140여일을 휴가로 쓸 수 있다.

미국의 경우는 70년대 초 공휴일을 재조정하는 방법으로 근로자이 쉴 수 있는 날짜를 늘렸다. 시차는 있지만 일본이나 중국도 공휴일이 주말과 겹치거나 꼭 지켜야 할 날짜가 아닌 기념일을 월요일로 정하는 방법으로 연휴를 만들었다. 이런 결정으로 소위 ‘황금 연휴’가 생겼고 바캉스를 분산시키는 부산물을 얻기도 했다.

우리의 경우 70년대 중반부터 바캉스란 이름으로 여름휴가가 본격화된 것으로 보인다. 경제발전으로 삶의 질에 대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고 고속도로의 확충, 자동차의 대중화, 그리고 휴가지 개발과 편리한 숙박시설 건설이 이뤄지면서 ‘친척집 원두막에서의 피서’를 대체하기 시작했다. 더구나 89년 해외여행 자유화 이후엔 외국으로 가는 바캉스도 한몫을 하고 있다.

프랑스, 독일, 덴마크 등 유럽의 여러 나라 사람들의 바캉스도 여름에 집중된다. 미국도 사정은 비슷하다. 다만 이들의 휴가기간은 우리보다 훨씬 긴 30일이나 된다. 그들은 여름휴가를 보내기 위해 1년을 준비한다. 단순히 먹고 마시고 떠들고 춤추는 찰나적인 흥취만을 겨냥하는 것은 아니다. 가고 싶었던 곳, 궁금하던 곳, 쉴 수 있는 곳을 찾는다. 별난 음식도 먹고, 읽고 싶었던 책도 펼치고, 풍광도 즐기면서 가족끼리 한적한 일상을 지내다가 돌아온다.

일상에서 벗어나 재충전한 후 남은 해를 잘 마무리하자는 데 방점을 찍고 있다. ‘더 즐겁게 일을 하기 위해 쉬라(Otiare quo melius labores)’란 말을 공연히 하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우리 선조들은 피서를 위해 유두(流頭: 맑은 시냇물에 머리감기), 탁족(濯足: 계곡물에 발 담그기), 거풍(擧風: 대청마루에서 시원한 바람 쐬기) 등으로 조용히 여름을 보냈다. 습정투한(習靜偸閒: 고요함을 익히고 한가로움을 찾아라)이 피서의 근간인 셈이다. 서양의 제도를 우리 것으로 속살을 채워 알차고 품격 있는 휴가문화를 만들면 어떨까 하는 공상을 해본다.

조선의 관리들은 24절기 중 입춘과 동지에 정기 휴가를 받았다. 또한 조선 초기에는 3년 1회, 조선 중기 이후로는 연 1회 부모를 찾아뵙는 ‘부모방문휴가’가 주어졌다. 부모방문휴가는 부모님댁에 머무는 일주일을 기본으로 오가는 기간을 거리별로 차등해 추가로 지급했다. 예를 들어서 관리의 부모가 호남에 거주한다면 교통기간 15일을 더해서 22일을 부여했다는 것이다. 당상관 이상의 고위직에게는 부모나 조상의 산소 돌봄을 명목으로 하는 ‘소분’이라는 7일간의 휴가를 추가로 지급됐는데, 이것은 5년에 한 번씩 사용 가능했다.

이 외에도 부모의 장례, 자녀의 결혼, 배우자 상(喪), 문병, 본인의 질병 치료 등도 비정기 휴가 사유가 됐다. 비정기 휴가는 정사(呈辭)라는 문서를 제출하고, 이것을 승정원이나 관찰사를 통해 결재를 받아야 했다. 조선시대에도 휴가가 있었을까? 흥미로운 것은 정기 휴가와 병가는 별도의 서류를 제출하지 않았다는 점인데, 황희(黃喜, 1363~1452)의 병에 따른 사직 요청을 세종이 계속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은 새삼 놀라운 일이다.

과거의 휴가는 오늘날의 휴가와 그 성격이 좀 달랐다. 오늘날이야 교통이 발달해 있고, 해외로의 출국이 비교적 자유로워서 전국의 휴양지, 그리고 해외로 휴가를 떠나는 일이 많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근대 이전은 휴가를 대부분 집에서 보냈다. 왕 역시 휴가를 위해 멀리 떠나는 일이 많지 않았고, 궁에서 휴가의 대부분을 보냈다.

궁 밖에서 휴가를 즐기더라도 기껏해야 근처의 온천이나 사찰에 가는 것이 전부인 수준이었다. 왕 이하의 리들 역시 집에서 휴가를 보내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실제 기록들을 보면, 신하들이 금강산을 비롯한 절경을 방문하는 행위는 관직에 있지 않은 상태에서 이뤄진것이 대부분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래도 과거와 현재의 휴가에서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중앙 관청의 휴가와 연계해 휴가를 가는 경우가 있다는 점이다. 결국 오늘날 여름철에 휴가가 여름에 집중되는 현상은 더위를 피하는 것, 학교의 여름방학 등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중앙 관청의 휴가가 집중돼 있다는 점도 큰 원인이다.

9월 초순이다. 아침 저녁으로는 제법 선선한 기운이 감돈다. 새벽녁에는 차가운 기운이 느껴진다. 가을이 가까이 다가오는 탓인지 거리의 가로수 잎들은 하나 둘 노랗게, 또 진갈색으로 물들어 간다. ‘절기를 이기는 기후는 없다’고 했다. 어느덧 무더위가 수그러들었다. 하지만 9월은 결코 낭만적이지 않다. 절기가 기후를 이기고 무더위를 물려가게 하고 있지만 이상기후로 늦더위 기운도 만만찮다.

자연에는 항상 겸손해야 한다는 경고를 다시금 새겨야 하는 계절이다. 뜨거운 햇볕은 벼를 영글게 하고 과일의 과육을 키운다. ‘더운데 어떻게 지내냐’는 인사가 일상이 된 요즘 철모르고 더위를 맞고 있는 철부지가 이 더위에서 각자의 경험과 노력이 쌓이면 ‘철을 아는’ 성숙하고 건강한 어른으로 자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전국매일신문] 최재혁 지방부국장
jhchoi@jeonmae.co.kr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