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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席] 가을에 붙인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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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席] 가을에 붙인 단상
  • 최재혁 지방부국장
  • 승인 2023.08.24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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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 지방부국장

아직도 온 세상이 끓어오르는 열기에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다.그것도 자연섭리의 일부분이겠지 생각하면서도 그늘과 냉수를 찾기에 바빴다. 벼와 과일 등 농작물들은 더위를 즐기며 가을을 즐겁게 준비하고 있지만 사람들의 한계는 아주 얕고 약했다. 어쩌면 여름 계절에 가장 약한 존재가 사람이 아닐까.

처서란 한자의 풀이처럼 곳 처(處)와 더울 서(暑)로 더위가 그치는 날 양력으로 8월 23일이다. 선선한 아침 기운이 맴도는 24절기 중 하나이다. cheak point ‘절기’란 한 해를 스물넷으로 나눈 표준으로 태양의 황도상 위치에 따라 계절을 구분하기 위하여 만든 용어다. 지금은 지구의 온난화로 인해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옛날로부터 조상들이 처서를 기다리며 더위가 물러나길 바랬다.

지난 23일은 24절기 중 열네 번째에 해당하는 절기인 처서(處暑). 처서는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추’와 농작물에 이슬이 맺힌다는 ‘백로’ 사이로, 태양이 황경 150도에 달한 시점이며 양력 8월 23일 무렵이다. 올해 ‘입추’는 지난 8월 8일이었고, ‘백로’는 오는 9월 8일이다. ‘처서’는 여름이 지나면 더위도 가시고 신선한 가을을 맞이하게 된다는 의미로 ‘더위가 그친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처서는 입추(立秋)와 백로(白露)사이에 든다. 처서는 여름 더위도 가시고 선선한 가을을 맞게 된다는 의미로 더위가 그친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흔히 처서는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 타고 온다.’고 할 정도로 계절의 순행이 나타나는 때다. 이러한 자연의 미묘한 변화를 고려사(高麗史)에는“처서의 15일 간을 5일씩 3분해 첫5일 초후(初侯)에는 매가 새를 잡아 제를 지내고, 두 번째5일에는 천지에 가을 기운이 돌며, 세 번째5일 말후에는 곡식이 익어간다.”고 했다.

처서가 지나면 따가운 햇볕이 누그러져 풀이 더 이상 자라지 않기 때문에 논두렁의 풀을 깎거나 산소를 찾아 벌초했다. 예전에 부인들과 선비들은 이 무렵 여름 동안 장마에 젖은 옷이나 책을 그늘에서 말리거나 햇볕에 말렸다고 한다.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는 속담처럼 파리, 모기의 극성도 사라지고, 귀뚜라미가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한다. 또 이 무렵은 음력7월15일 백중(百中)의 호미씻이[洗鋤宴]도 끝나는 시기여서 농사철 중에 비교적 한가한 때다.

그래서 “어정칠월 건들팔월”이란 말도 있다. 어정거리면서 칠월을 보내고 건들거리면서 팔월을 보낸다는 뜻이다. 다른 때보다 그만큼 한가한 농사철이라는 것을 재미있게 표현한 말이다. 처서 무렵의 날씨는 한해 농사의 풍흉(豊凶)을 결정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비록 가을의 기운이 왔다고는 하지만 햇살은 여전히 왕성해야 하고 날씨는 쾌청해야 한다. 처서 무렵이면 벼의 이삭이 패는 때이고, 이때 강한 햇살을 받아야만 벼가 성숙할 수 있다.

무엇이 한꺼번에 성한 것을 비유적으로 이를 때 “처서에 장벼(이삭이 팰 정도로 다 자란 벼)패듯”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처서 무렵의 벼가 얼마나 성장하는가를 잘 나타내는 속담이다. 농사의 풍흉에 대한 농부의 관심은 크기 때문에 처서의 날씨에 대한 관심도 컸고, 이에 따른 농점(農占)도 다양했다. 그런데 요즘은 절기를 종잡을 수 없다. 처서인데도 서늘한 바람은 커녕, 한 낮엔 섭씨 30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이다.

곡식도 귀가 있다고 했다. 주인의 발자국 소리도 듣고,멀리서 불어오는 소나기 바람소리도 듣는다. 그러니 처서비가 내리는 것을 어찌 모르겠는가? 사람들이 처서비 내리는 것을 걱정하는 것 또한 어찌 모르겠는가? 그래서 가만히 생각해 보면 세상살이가 나 혼자 사는 것이 아니듯 곡식을 익게 하는 것도 세상 만물들의 염려와 관심, 그리고 각자들의 품앗이로 인하여 가을 수확이 된다.

여기에 산새소리는 더욱 멀리 울려 퍼질 것이다. 이 또한 고맙지 아니한가. 그래서 그냥 매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감사하며 살 일이다. 조상들은 따가운 햇볕이 누그러드는 처서가 되면 논두렁에 나가 풀을 깍고 선대(先代) 묘소에 벌초를 한다. 청명한 날에는 여름 내내 습기찼던 옷가지와 이불을 햇볕에 내다 말리며 가을맞이 준비도 했다. 뜨거운 여름 무더위에서도 정신을 차리고 지혜로운 마음으로 한 세월을 살아가는 것이다.

비록 찜통더위와 함께 가까이 와있는 처서(處暑)이지만 곧장 9월의 백로(白露 9.8)가 다가오는 것이다. 흰 이슬 백로까지 패지 못한 벼이삭은 더 이상 크지 못한다는 뜻이며 이어 서리가 내리는 계절이 다가온다. 세월을 아끼는 지혜로운 우리 모두가 되어야겠다. 오후가 되어도 하늘 서쪽으로 가있는 태양은 여전히 뜨겁게 비추이며 우리에게 자신을 당당히 내보인다. 팔월 하순으로 넘어가는 지금 우리는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어 감사하다.

안도현 시인의 ‘9월이 오면’ 시(詩)한구절을 옮겨 본다. 그대/ 9월이 오면/ 9월의 강가에 나가/ 강물이 여물어 가는 소리를 듣는지요/ 뒤따르는 강물이 앞서가는 강물에게/ 가만히 등을 토닥이며 밀어주면/ 앞서가는 강물이 알았다는 듯/ 한번 더 몸을 뒤척이며/ 물결로 출렁 걸음을 옮기는 것을/(중략), 그대/ 9월의 강가에서 생각하는지요/ 강물이 저희끼리만 바다로 가는 것이 아니라/ 젖은 손이 닿는 곳마다/ 골고루 숨결을 나누어 주는 것을/(생략).

[전국매일신문] 최재혁 지방부국장
jhchoi@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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