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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이봉창 선생과 ‘왜왕’의 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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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이봉창 선생과 ‘왜왕’의 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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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8.2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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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 언어철학자·시민사회신문주간

일왕이 지워버린 천황(天皇)-공공언어의 이런 소통

"나는 일왕을 죽이는 일을 결코 이봉창 한 사람이 멋대로 벌이는 난폭이 아니라 조선 민족이 전반적으로 독립을 희망하고 있기 때문에 그 민족을 대표하여 첫 번째 희생자로서의 결행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8월 15일 전후(前後) ‘광복절 주간’이라고 할 시기에 서울의 용산역 대합실에서 선보였던 독립운동가 이봉창 선생(李奉昌·1900~1932)을 기리는 전시물의 일부다. 독립기념관과 한국철도공사가 마련했다. 선생은 독립운동에 투신해 김구 선생의 품 안에 들기 전에 철도원이었다.

그런데 저 ‘일왕을 죽이는 일’(밑줄 부분)이 며칠 전에는 ‘천황폐하를...’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열차 시간 바빠 자리를 떠야 했다.  

귀경(歸京) 길에 다시 보니 그 부분에 ‘일왕을 죽이는 일’이란 내용이 덧대어져 원래 내용을 덮고 있었다. 일왕(日王)이 ‘천황’을 지워버린 것이다. 

일왕은 왜(倭) 일본의 왕, 천황(天皇)은 자기네들이 스스로의 왕을 높여 부른 칭호다. 

동경에서 1932년 소위 ‘천황폐하’에게 이봉창 선생이 폭탄을 던졌다. 비록 빗나가 형장(刑場)의 이슬로 스러지며 우리 가슴에 영롱한 별로 남았지만, 당시 그가 동아시아에 미친 충격파는 거대했다. 

당시 국민당 기관지 등 중국 신문들은 ‘한국인 이봉창이 일왕을 저격했으나 불행히도 명중시키지 못하였다.’고 대서특필했다. 중국인들의 간절한 의사를 반영한 뉘앙스(어감)로 읽힌다. 

그 보도 이후 일본군이 신문사를 파괴하고 중국 정부에 항의하는 등 중·일 관계가 매우 악화되었다. 

양 손에 수류탄, 가슴에 한인애국단(韓人愛國團) 선서문을 매단 선생의 사진, 늘 잊을 수 없다. 맹렬한 눈에 서린 혼(魂) 그 안신(眼神)을 우러러 볼 일이다.   

전기(前記) 인용문은 일본 측의 이봉창 선생에 대한 신문조서(訊問調書) 중 일부다. ”겹따옴표“을 붙였으니 ‘천황폐하를 죽이는 일...’이란 표현도 실은 문제는 없겠다. 왜(일본)의 수사 당국이 선택한 언어이고 (필요에 의해) 이를 그대로 쓴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용문이었을망정 ’선생‘의 이름으로 공공의 장소에 게시(揭示)된 언어다. 인용(引用)부호의 활용법이나 사례에 비춰보면 (논리적으로) 문제를 삼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그렇지 않다. 불연기연(不然其然)인가.

천황을 (일왕이) 지워버린 저 상황, 누군가 필자의 이 심정처럼 느끼고 ’당국‘에 의견을 표명 또는 항의한 결과일 터다. 공공(公共)에 전시된 언어가 이런 소통(疏通 커뮤니케이선)의 현상을 빚기도 하는구나, 

말의 속뜻이나 ’정치성‘까지, 우리 언중(言衆)은 매섭게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높이 평가할 대목이다. 言衆은, 같은 언어를 사용하면서 공동생활을 하는 언어 사회 안의 대중(大衆)이다.

공공언어는 공공재(公共財)다. 우리 언어대중 모두가 공유(共有)하는 자산이다. 언어대중의 마음과 생각하는 방식이 실려 있다. ’한국인이 한국인인 이유‘의 첫 번째 항목을 (공공)언어는 품고 있는 것이다.

저 마음이나 사고방식, 잃으면 아니 된다. 휴대전화나 카드 든 지갑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 마냥 늘 정신줄을 놓지 말자. 

내(우리) 재산이니, 늘 감시하고 (저렇게) 관여하자. 침묵하면 안 된다. 세상 이치다.

[전국매일신문 칼럼] 강상헌 언어철학자·시민사회신문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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