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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필의 돋보기] 그들의 덕목, 남의 말 파악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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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필의 돋보기] 그들의 덕목, 남의 말 파악하기
  • 최승필 지방부국장
  • 승인 2023.11.26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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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필 지방부국장

중국 춘추시대 사상가인 공자(孔子)는 평소 덕(德)을 행해야 하며, 말(言)을 삼가서 행동에 부족한 점이 없도록 힘써야 한다고 했다. 그래도 말에 남음이 있어 표현하고 싶다면 ‘언고행(言顧行)’하며 ‘행고언(行顧言)’하라 했다.

‘언고행(言顧行)’은 ‘말은 행동을 돌아본다’는 뜻이고, ‘행고언(行顧言)’은 ‘행동은 말을 돌아본다’는 뜻이다.

누구나 감히 다하지 못한 말들을 하고 싶을 땐 ‘할 말들이 행동에 어긋나지는 않는지’를 돌아봐야 하고, 그러고 나서 ‘했던 행동이 말과 일치했는지’를 꼭 돌아봐야 한다는 의미다. 돌아본다는 것은 반드시 지난 일을 돌이켜 생각해봄을 의미하는 것이다.

중국 전국시대에 맹자(孟子)와 묵적(墨翟)과 양주(楊朱)는 같은 시기에 살았다.

묵적은 자기 자신이건 다른 사람이건 친하건 친하지 않건 모두 차별 없이 사랑하는 ‘겸애(兼愛)’를 주창했고, 무차별적인 박애와 평화주의자였던 묵적은 묵가의 사상이 사회를 지배하며, 공자의 인(仁)이 시대에 맞지 않음을 공격했다.

이들에 대해 맹자는 “묵적은 차별 없는 사랑을 주장하며, 머리 꼭대기부터 발뒤꿈치까지 다 닳아 없어지더라도 천하를 이롭게 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할 사람이며, 양주는 나만을 위할 것을 주장하며, 자신의 터럭 한 오라기를 뽑아서 천하를 이롭게 할 수 있다고 할지라도 그렇게 하지 않을 사람”이라고 평했다고 한다.

그는 또, 제자 공도자(公都子)에게 “훌륭한 지도자가 없으니까 묵적과 양주의 터무니없는 이론이 천하에 가득 찼다”고 했다.

이어 “묵적은 겸애(兼愛)를 내 세우지만 아비를 무시하는 것이고, 양주는 위아(爲我)를 말하지만 윗사람을 무시하는 것이다. 그런 잘못된 말들은 ‘작심(作心)’에서 생긴다. 잘못된 말은 일마다 해롭게 한다. 또한 정치에도 해를 끼치게 된다”며, 호변(好辯:좋은 말솜씨)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이처럼 맹자(孟子)는 공자(公子) 못지않게 말(言)의 중요성에 대해 심각하게 다뤘다.

맹자가 성왕들의 뒤를 잇는 역할을 자임하면서 구체적으로 하려 했던 일도 근거 없는 말과 사특(私慝)한 말을 종식시키는 것이었다고 한다.

즉, 양주와 묵적의 이론이 사람들을 현혹시키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었고, 그러한 사특한 말들은 “마음에서 일어나면 행동에 해를 미치고 행동하는 데 영향을 주면 정치에 해를 미친다”고 했다. 맹자 등문공하(藤文公下)편에 기록된 내용이다.

맹자의 가장 핵심적인 개념인 인(仁)·의(義)·예(禮)·지(智)의 단서가 되는 사단(四端)을 다룬 공손추상(公孫丑上)에서도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맹자의 수제자 공손추(公孫丑)가 물었다. “남의 말을 안다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편파적인 말을 들으면 그 사람이 어디에 가려 있는지를 알며, 근거 없는 말을 들으면 그 사람이 어디에 빠져 있는지를 알고, 사람을 망치려는 사특한 말을 들으면 그 사람이 정도에서 얼마나 멀리 있는지 알고, 둘러대는 말을 들으면 그 사람이 처한 궁지를 안다”고 했다.

맹자는 이어 “이러한 나쁜 말들은 마음에서 일어나면 정치에 해를 끼치고, 정치로 행해지면 나라 일을 해치게 된다. 성인이 다시 살아와도 내 말을 따를 것이다”

유대인 율법학자들이 사회의 모든 사상에 대해 구전·해설한 것을 집대성한 책 ‘탈무드(Talmud)’에 나오는 얘기다.

랍비가 하인에게 “시장에 가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사 오너라” 할 때도 “가장 맛없는 음식을 사 오너라” 할 때도 그 하인은 늘 혀만 사 왔습다. 랍비가 그 이유를 묻자 하인은 “혀가 좋을 때는 혀보다 좋은 것이 없고, 혀가 나쁠 때는 혀보다 나쁜 것이 없는 까닭”이라고 했다. ‘말은 당신의 노예지만 입 밖에 나오면 주인이 돼버린다’는 말이다.

요즘 우리 정치권이 막말 논란에 휩싸였다.

최강욱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9일 민형배 의원의 북콘서트에 참석해 ‘설치는 암컷’이라는 표현으로, 윤석열 정부를 비판한 것이 논란의 시발점이 됐다.

행사 사회자가 현재 한국 정치를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에 비유하자, 최 전 의원이 “동물농장에서 보면 암컷들이 나와서 설치고 이러는 건 잘 없다. 이제 그것을 능가하는 데서”라며 “제가 암컷을 비유하는 말씀은 아니고, 설치는 암컷을 암컷이라고 부르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발언에 대해 정치권을 중심으로 비난이 이어졌지만 사흘 뒤인 22일 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 남영희 부원장이 한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최 전 의원의 발언에 대해 “그 말을 왜 못하는가”라며 “그것을 빗대서 ‘동물농장’에 나오는 상황을 설명한 것이 뭐가 그렇게 잘못됐단 말이냐”고 주장한 것이다. 정치권의 비난은 더욱 거세졌다.

남 부원장은 결국 이틀 뒤인 24일 페이스북을 통해 “당과 국민께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며 “모든 책임을 지고, 민주연구원 부원장직을 내려놓겠다”며 부원장직 사퇴 의사를 밝혔다.

민주당은 막말과 설화 부적절한 언행을 엄격히 검증해 내년 총선 공천 심사에 반영하겠다고 했지만 당내부에서는 정작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들은 전혀 반성하지 않은데 뒤늦게 수습한다고 중도층 민심을 되돌릴 수 있겠나라는 회의적인 반응이 나왔다.

송갑석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당내 몇몇 인사들이 일말의 문제의식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다”며 “어쩌다 당의 수준이 이렇게 됐는지 참담하다”고 했고, 여선웅 전 청와대 청년소통정책관도 “도대체 누구를 보고 정치를 하기에 이런 막말과 썩어빠진 상황 인식을 갖고 있냐”고 했다. 막말 논란을 일으킨 최 전 의원은 아직도 사과하지 않고 있다.

그는 오히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향해 “정치적 언사를 남발하면 헌법 위반으로 탄핵 사유”라고 비판하고 있다.

최 전 의원은 24일 자신의 SNS를 통해 “‘바보야, 문제는 민주주의야!’, 번역도 제대로 하고 링크한 글을 봐야 한다. 내가 지적한 건 칼럼의 내용이란 게 분명하지 않느냐”고 했다.

자신의 ‘암컷 발언’ 논란 이후 SNS에 한 언론사의 칼럼 기사를 인용해 ‘It’s Democracy, stupid!(이게 민주주의다, 멍청아)’라고 적은 데 대해 한 장관이 24일 울산에서 기자들과 만나 “당 지도부의 경고에도 ‘It’s Democracy, stupid라고 SNS에 올린 것처럼 ‘이게 민주당이다, 멍청아’라고 말하면 국민들이 더 잘 이해하실 것 같다”라고 꼬집은 데 대한 맞대응 주장이다.

최 전 의원은 “우리 헌법재판소는 만약 어떤 정무직 공무원이 공개 석상에서 맥락에 닿지 않게 끼어들어 정치적으로 편향된 언사를 남발하면 헌법 위반으로 탄핵 사유라는 판례를 남겼다”며 “하도 어이가 없어 그냥 무시하려다 이렇게라도 알려주지 않으면 계속 멍청이로 남을 것 같아 설명까지 해줘야 하니 좀 그렇다”고 덧붙였다.

맹자는 나와 다른 이론이나 주장이 야기하는 마음을 흔드는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남의 말 파악하기’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막말 논란을 불러온 정치인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다.

[전국매일신문] 최승필 지방부국장
choi_sp@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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