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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접때 석(昔)-홍수의 언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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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접때 석(昔)-홍수의 언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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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7.1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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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 언어철학자·시민사회신문주간

누가 저 비를 멈추게 할 것인가? 

‘훌 스탑 더 레인(Who’ll Stop The Rain)’, 문명비판 분위기 담긴 1970년대 미국 팝그룹 CCR(씨씨알)의 히트작, 베트남전 반전(反戰) 노래다. 밥 딜런, 존 바에즈 등과 함께 반향이 컸다. ‘누가 저 비를 멈추게 할 것인가?’란 뜻. 

큰 비 보며 저 노래를 떠올렸다. 얼른 그쳐야 할 텐데, 간절한 마음 때문이었겠다. 이번에 극한호우(極限豪雨)라는 ‘용어’가 세상에 떠올랐다. 1시간 누적 강수량 50mm 이상, 3시간 90mm 이상일 때를 가리킨다고 한다.

다른 나라 얘긴 줄만 알았던 기후재난, 실감났다. 물(비) 뿐이랴? (산)불 폭염으로도 코앞에 닥쳤다. 노아의 방주(方舟)와 함께, 동아시아 설화시대 홍수(洪水)의 기억인 昔(석)자도 생각났다. 거북 배딱지(갑골)에 그려진 그림(글자) 얘기다. 

3,300년쯤 전 황하유역의 갑골문(甲骨文)이다. 이는 시간 흘러 오늘의 한자(漢字)가 됐다. 昔자는 큰 비 거대한 물줄기가 해(日 일)를 덮어버린 천지 뒤집힌 풍경의 디자인이겠다. 日 즉 태양 위에 출렁이는 파도 그림, 상상해보라. 어원(語源)으로 살핀 문자론이다. 

문명의 새벽을 살던 그 사람들 기억에 ‘그 때 참 비 억수로 많이 왔다.’로 새겨지고, 갑골의 (그림)문자에는 ‘그때’라는 뜻이 매겨졌다. (비가 많이 왔던) 그때가 昔이 된 것이다. 시적(詩的) 은유로 보자. 

그때 즉 접때를 가리키는 昔자, 훈(訓 뜻)과 발음 함께 ‘접때 석’이라 읽는다. 거기에 마음(忄/心 심) 그림을 더한 惜은 ‘서운할 석’이다. ‘석별(惜別)의 정(情)’ 할 때의 惜이다. 한자의 뜻은 (대개) 그 글자의 그림에서 온다. 

비 많이 온 그때(昔) 아끼던 사람이 물에 휩쓸려 죽어 마음 아팠다(惜)는 식으로 한자(의 그림)를 본다. 글자를 보면(읽으면) 소리도 들리는 듯하다. 큰물 넘치는 홍수(洪水)의 洪도 비슷하다. 물(氵/水 수)과 두 손으로 받든다는 공(共)의 합체로 ‘큰물’의 뜻이 됐다.

서양의 논리로 동아시아 사람의 바탕(생각)을 분석(分析)하면 그 그림과 소리를 느끼기 어렵겠다. 서양언어와, 한국어의 중요한 바탕 중 하나인 한자(어)의 차이다. 우리가 쓰는 한글(훈민정음)은 성군(聖君) 세종대왕이 580년 전인 1443년 창제(創製)하셨다. 

언어(말글)는 그 사람(들) 생각의 본디다. 한자어가 어렵게(낯설게) 느껴지는 이유일 수도 있겠다. 서구의 지식체계로 성장한(공부한) 동양인인 우리의 사고방식은 서구식인가? 동서(東西)를 겸전(兼全)한 양손잡이라면 BTS처럼 세계를 휘어잡으리.  

접때(昔)와 설화시대 홍수 때를 시기적으로 견줘보자. ‘접때’의 (국어)사전적 의미는 ‘오래(되)지 아니한 과거의 어느 때’다. “언젠가 전에 내가 그러지 않았니?”하는 투의 과거인 것이다.

그러나 昔 글자의 원천인 그 홍수는 지금으로부터 4,300년 전의 일로 추정된다. 갑골문보다 천년쯤 전이다. 비교하면, 인간 역사 또는 우리 지구 행성(行星)의 생성과 변천(變遷)에서 4천년쯤은 ‘접때’와 같이 가볍게 여겨지는 것일까? 말글은 이렇게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요즘 ‘생전 처음 보는 비’ ‘이런 비는 난생 처음’같은 말 듣는다. 그런데 이번 비는 ‘5백년 또는 1천년의 확률(確率)’이라고 한다. 흔한 말 ‘(나의) 생전’이나 ‘(내) 난생’같은 단어는 새 발의 피다. 이런 기후재난은 타협이나 개선 정도 노력으로는 어림없을 듯하다. 

이대로 가면 동아시아 설화의 그 홍수나 노아의 방주와 같은 천지가 개벽(開闢)하는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는 시각도 있다. 섭리(攝理)다, 심은 대로 거둔다. 

지금은 진혼(鎭魂)의 곡조를 지어야 할 때일까? 누가 저 비를 멈추게 할 것인가?

[전국매일신문 칼럼] 강상헌 언어철학자·시민사회신문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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