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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207] 대통령의 잦은 거부권 행사, “결코 만능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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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207] 대통령의 잦은 거부권 행사, “결코 만능은 아니다”
  • 서길원 大記者
  • 승인 2024.01.31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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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길원 大記者

“세월호 참사가 그렇듯이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 할 국가의 존재는 대형 참사 앞에서 언제나 가을날의 낙엽만큼이나 가벼웠다.”

2022년 10월 29일 밤 10시가 조금 넘었을 무렵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동 이태원로에서 대형 압사 사고가 발생, 159명이 사망했다. 참사 발생 두 달도 안돼 친구 둘을 이태원에서 잃고 다리에 부상을 입었던 고등학생이 극단적 선택을 했고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 사망자도 26명이나 포함됐다. 

2003년 192명이 사망했던 대구 지하철 참사와 304명이 사망한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대한민국 역대 최대 규모의 인명 사고이다.

국민들은 경악했고, 국민의 목숨을 지켜야 할 국가는 책임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바빴다.

당 초 경찰은 10만 명가량 모일 것으로 예상, 경찰 137명을 현장 배치했으나 핼러윈데이를 맞아 30만 명의 인파가 몰렸다.

용산구청은 당시 이태원에 많은 인파가 몰릴 것을 우려하는 ‘핼러윈데이 치안 여건 분석 및 대응 방안 보고’가 있었음에도 불구, 질서 유지와 인파 통제를 별도로 지시하지 않았다.

사고 발생 4시간 전부터 경찰 측에도 압사 위험에 대한 신고가 쇄도했으나 첫 신고로부터 5시간에야 경비 기동대가 처음으로 현장에 도착했다.

소방과 경찰이 도착했을 때는 아래에 깔린 피해자들의 팔을 잡고 꺼내려 했으나 워낙 많은 사람이 층층이 쌓여 있어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참사 다음날 오전 대국민담화를 통해 "정말 참담하다, 일어나선 안 될 비극과 참사가 발생했다"라는 소감을 밝히며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참사 책임을 이유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국회 해임건의안이 가결됐으나 윤석열 대통령이 이를 거부하자 국회에서 이상민 행정안전부장관에 대한 탄핵 소추를 추진, 가결됐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국무위원 및 대한민국의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안 가결이다.

1주기를 맞아 참사가 일어났던 거리에 3개의 빌보드로 구성된 추모 공간인 '기억과 안전의 길'이 조성되고 골목 바닥에는 '우리에겐 아직 기억해야 할 이름들이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새겨졌다.

이태원 참사에 대한 건조한 기억이지만 규명되지 않은 진상으로 여전히 진행 중이다. 세월호 참사가 그렇듯이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 할 국가의 존재는 대형 참사 앞에서 언제나 가을날의 낙엽만큼이나 가벼웠다.

지켜야 할 국민의 죽음 앞에서 국가의 가벼운 이유를 묻지만 국가는 바위만큼이나 무거운 침묵으로 또 다른 침묵을 강요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0일 이태원특별법(10·29 이태원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법)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사회적 참사의 적절한 진상규명 과정은 그 자체로 피해자들이 일상으로 회복하도록 돕는 의미가 있고 안전하고 신뢰받는 사회로 만드는 기초가 될 것"이라며 거부권 행사 반대 입장을 밝혔지만 거절됐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국무회의에서 이태원 특별법 재의요구안을 상정·의결하기에 앞서 “자칫 명분도 실익도 없이 국가 행정력과 재원을 소모하고, 국민의 분열과 불신만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며 “참사로 인한 아픔이 정쟁이나 위헌의 소지를 정당화하는 수단이 될 수는 없다”고 했다.

정부는 대신 ‘10·29 참사 피해지원 위원회’를 조속히 설치해 이태원 참사 피해자 지원을 확대하겠다고 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시민대책회의는 “어떻게 진상규명의 책임은 외면하면서 돈으로 희생자와 유가족들을 이렇게 모욕할 수 있는가”라고 분노했다. 이정민 유가족협의회 위원장은 “정부는 우리를 국민으로 여기지 않았고, 우리도 오늘부터 이 정부를 정부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반발했다.

국민의 눈물을 닦는데 인색한 정부는 건강한 정부가 아니다. 정치적 유불리를 셈하기 앞서 국민의 서러움을 위로하고 아픔을 보듬는 정부가 신뢰받는 정부이자 강한 정부다. 대통령의 잦은 거부권 행사는 결코 만능이 아니다. 

[전국매일신문] 서길원 大記者
sgw3131@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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