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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열의 窓] 한 톨의 쌀을 만들기 위한 88번의 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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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열의 窓] 한 톨의 쌀을 만들기 위한 88번의 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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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10.26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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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열 국립한경대학교 연구교수

우리가 날마다 먹는 밥은 벼의 씨앗이다. 쌀‘미(米)’ 자를 풀어보면 ‘팔(八) + 십(十) + 八(팔)’자로 이뤄져 있다. 쌀 한 톨을 얻기 위해서는 무려 88번의 농부의 손길이 닿고, 일 년 내내 정성이 필요하다. 옛날 우리 농촌의 쌀농사 과정을 한 번 살펴봤다.

먼저 24절기의 여섯 번째 절기 곡우(穀雨)가 돌아오면 못자리를 마련하는 것부터 본격적인 농사철이 시작된다. 양력 4월 20일 무렵이다. 곡우가 되면 쌀농사에 가장 중요한 볍씨를 따뜻한 물에 담가 싹을 틔우는 일을 준비한다. 볍씨를 담아두었던 용기는 솔가지로 덮어둔다. 이때 초상집에 가거나 부정한 일을 당하거나 부정한 것을 본 사람은 집안에 들어와서도 볍씨를 보지 않게 했다고 한다. 만일 부정한 사람이 볍씨를 보거나 만지게 되면 싹이 잘 트지 않아 그 해 농사를 망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못자리 설치는 논 모서리를 갈고, 써레로 울퉁불퉁한 바닥을 평평하게 골라 골을 내고 두둑을 내어 모판을 마련했다. 그리고 바닥에 물을 빼주었다. 못자리를 만들 때는 논 2천 평당 30평 정도를 만들었다. 모내기 날짜가 잡히면 보름 전에 누렁소에 쟁기를 걸고 논을 갈았다. 다음은 물을 대고 모내기 이틀 전에 써레를 매달아 흙덩이는 잘게 부수고 논바닥은 평탄하게 고른다. 또 모내기 좋게 물을 빼고 비료를 뿌려 주는 등 여러 과정을 거처 모를 심는다. 주로 5월 하순경 모내기를 했다.

동네 어른 10여 명 이상이 모여 품앗이로 못줄을 대고 한 줄, 한 줄 꽂아 나갔다. 한사람이 손 모내기로 하루에 200평 정도의 모내기를 이루어냈다. 엊그제 모내기를 한 것 같은데, 적당한 비와 뜨거운 햇빛과 비료 덕분에 어느새 논에 벼들이 뿌리를 잡아가고 진녹색으로 벼 포기가 두꺼워지고 있다. 키도 크고 포기도 벌어져 논에 벼가 가득 찼다 싶으면 김매기를 해야 한다. 7월부터 9월 말까지는 병충해방제를 위해 10회 정도 농약을 살포했다.

들판이 진녹색에서 연두색으로 변하며 벼 이삭에 알이 배이고 패기 시작한다. 이후 벼알이 여물고 서서히 고개를 숙이면 물도랑을 쳐 논의 물을 서서히 빼 벼베기를 준비한다. 벼베기 전날 낫은 숫돌에 정성스레 갈아 세 자루 쯤 준비해서 목에는 수건을 두르고 낫과 숫돌을 챙겨 논으로 나선다. 논에서는 하루 종일 벼 포기가 밑둥에서 서걱서걱 잘려나가는 소리만 들린다. 베어진 벼는 잘 말린 후 집까지 옮겨 볏가리를 쌓아두면 된다. 어느덧 된서리가 내리며 살얼음이 얼기 시작한다. 이때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횃불을 밝히며 발로 밟아 돌리는 수동식 탈곡기로 벼를 털었다.

타작한 벼는 고무래로 긁어 가마니에 담고 검불이 많이 섞인 것은 나중에 바람개비로 날려 보내고, 흙이나 돌 따위는 키질을 해서 깨끗하게 가마니에 담는다. 날씨 좋은 날 다시 말려 공판(추곡수매)에 낸다. 봄부터 가을까지 농사에 들어간 농약과 비료 등 농협에 갚아야 할 농자재 대금과 영농대출금, 사채 등 갚아야 할 돈을 마련한다. 당장 양식거리를 위해 나머지 몇 가마는 방앗간으로 보내 양식을 마련했다. 이렇게 모든 걸 청산하고 망태기를 메고 들판에 나가떨어진 벼 이삭을 주우면 길고 힘들고 복잡한 추수가 마무리된다. 일년 농사도 이렇게 끝이 났다.

지금보다 50배 이상 노동시간이 들어갔지만 쌀 생산량은 지금보다 작은 시절의 농사이야기다. 지금은 영농의 기계화로 노동력 절감, 재배 기술의 과학화로 생산량이 2배 이상 늘었다. 들판의 농작물은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이 있듯이 늘 논에서 벼를 정성껏 돌봐야 진정한 쌀이 생산된다.

쌀은 우리민족의 혼이 깊게 깃들어 있는 영원한 생명 자원이다. 미래에는 식량전쟁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한다. 자국의 식량 자원을 지키지 못하면 국가의 미래도 불투명할 것이다. 올 쌀농사는 농부의 지극정성으로 병충해가 적었고, 해마다 꼭 한두 번 있었던 풍수해도 없어 풍년이 됐다. 풍년으로 가득 찬 들판만큼 농민들의 마음도 풍요로 가득 차 활짝 웃는 가을이 됐으면 좋겠다.

[전국매일신문 칼럼] 문제열 국립한경대학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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