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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폭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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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폭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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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11.02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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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철 김포시 통진읍 도사리 꽃씨맘씨농장주

북한에서 연평도에 포격을 해 많은 피해가 발생했다. 정부 요인이 위로 차 방문했다가 보온병을 몰라보고 포탄이라고 말을 해서 웃음거리가 되었는데, 이렇게도 순진무구한 백성들에게 포탄을 쏘아 댔다니 참으로 천인공노 할 일이다.

포탄이나 폭탄이 얼마나 무서운지 당해본 사람들만은 알 것이다. 우리나라의 국민이 동족상잔인 6.25의 비극 속에서 무수한 폭탄과 포탄에 희생되었고, 지금도 중동 일부의 지역에서 폭탄테러가 발생해 인명피해가 생기기도 한다. 내가 6.25전후 세대로서 폭탄의 피해를 모른다고 하겠으나,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다 보니 테러 지역도 아닌 평화로운 나라에서 폭탄을 맞고서 고생을 하고는 한다.

초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지금은 없어졌지만 읍내나 동네에 ‘대포집'이 있었다. 어린 나이라 대폿집은 출입을 못했지만 막연한 생각만으로 그 대포집이 어떤 곳 이란 것은 알고 있었다. ‘대포집'은 이름 그대로 대포였다. 그곳을 거쳐 나온 사람들은 취중에 대포(허풍)를 곧잘 쏘기도 했다. 대포집에서 가끔 폭탄이 터지기도 해서 대포집 문짝이 떨어져 나가며 유리가 파편으로 튀었고, 주전자가 신작로로 날아가 떨어지기도 했으며, 비명 소리도 들리고는 했다.

어느 날은 대포집에서 발사된 포탄이 순항 미사일처럼 신작로를 거쳐 골목길을 굽이 돌고 전봇대를 지나 집까지 들어와서 터지기도 했다. 그럴 때면 동생과 같이 밖으로 피하기도 했었다. 그 악몽 같은 폭탄의 폭발음을 듣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근래에 폭탄을 맞고 지리멸렬 했던 적이 있었다.

고스톱 판에서 폭탄을 맞고 피를 흘리는 것이 아닌 피를 빼앗겼다. 내 피를 빼앗아간 상대 선수는 입을 드라큘라처럼 벌리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폭탄의 제조에는 콤포지션B나 콤포지션4, TNT 등이 사용되어 제조되지만 그는 사제폭탄 격인 삼 사구라 석 장으로 폭탄을 제조하여 터뜨렸다. 삼사구라를 흔들어서 점수가 났기 때문에 나는 그 피해가 막심하기 그지없어 피와 광박을 당하여 결국 돈이 모자라 오링을 당한 것이다. 고스톱 판에서 오링이란 곧 사망을 뜻한다. 고스톱 판에서까지 폭탄을 맞고 죽은 것이다.

대포 폰, 대포 통장은 수시로 우리를 노렸다. 휴대폰의 벨이 울릴 때 모르는 번호나 의심 나면은 수화기 자체에 손을 대지를 않았다. 수화기에 손을 댄다는 것은 자칫 부비트랩의 인계 철선을 건드리는 짝이 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부터였다.

그렇게 조심을 했건만 그 후로도 폭탄은 수시로 터져 그 피해를 고스란히 당하기도 했다. 여름 두 달 간의 비로 부추가 녹아내려 수확을 못했는데, 신문 지상에는 ‘물 폭탄'이라 보도했고, 겨울에는 눈 폭탄을 맞아 비닐하우스가 주저앉기도 했다. 교통사고를 당하기도 했는데 가해 차량이 대포 차여서 보상을 한 푼도 못 받은 적이 있었다. 대포차라면 필시 포탄을 쏘는 차를 지칭하는 말일 터인데, 무시무시한 대포차에 감히 보상 치료비를 운운하겠는가. 겁을 상실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했다. 어찌되었던 간에 포탄이나 폭탄은 무서운 것이다.

친구가 위로 차 저녁 식사에 초대했는데, 소주와 맥주를 섞은 폭탄주에 전치 2일의 부상을 당해 꼼짝 못하고 드러누웠었다. 옆에서 쯧쯧 거리며 혀를 차던 아내가 무엇을 보았는지 눈에서 광채를 번득이더니, 들여다보고 있던 종잇장을 내던지고 외출을 했다. 아내가 들여다보았던 것은 신문에 끼어왔던 선전전단지였는데, 전단지 문구 가운데 큰 글씨로 '폭탄 세일'이라고 쓰인 것이 보였다. 폭탄을 세일 한다니 참으로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아내는 전단지를 보고서 세일하는 폭탄을 사기 위해 폭탄이 터지는 전선(?)으로 떠난 것이다. 그날 저녁 아내는 시장 봐온 물건을 조리대 위에서 닦달을 하는데, 한쪽에는 조개껍질이 쌓였고 생선 내장은 내장대로, 폭발물 처리반이 폭탄 분해를 하듯 칼을 드라이버 삼아 생선을 분해하고 있었다. 나는 폭탄의 피해자가 되어 드러누웠는데, 나의 아내는 폭탄 세일에서 노획 해 온 생선을 떡 주무르듯 하며 분해하고 있었다. 나는 폭탄의 피해자가 되어 꼼짝 못하는데, 나의 아내는 폭탄을 이기는 것이다.

[전국매일신문 기고] 유재철 김포시 통진읍 도사리 꽃씨맘씨농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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