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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머리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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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머리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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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11.16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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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철 김포시 통진읍 도사리 꽃씨맘씨농장주

주민등록증 갱신 시간이 두 시간 남았는데 긴 머리를 못 잘랐다. 이발소를 향해 뛰었다. 세상에 이런 낭패가 있는가. 이발소는 월요일이 쉬는 날이라 한다.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이발소 문을 잡고 두드리니, 안 열리던 문이 벌컥 열렸다. 죽어서 천당 문이 열린다면 지금 같은 심정이리라.

자초지종은 나중이고 날아서 의자에 먼저 앉았다. 시간 없는데 언제 머리 모양을 내겠냐며 머리는 박박 밀고, 구레나룻은 사진관에서 약품 처리하면 된다 하니 면도는 하지 말 것을 부탁했다. 돈은 나중에 드린다는 말을 뒤로 남기고, 바짓가랑이에서 비파 소리를 내며 간석동 사진관을 향해서 뛰었다. 사진관에서 만들어 준 속성 사진을 움켜들고 입에서 단감 내를 풍기며 동사무소를 향해 뛰었다.

나의 가상하고 처절한 노력의 대가로 시간 내에 동사무소에 들어 왔다. 통장님께 사진을 내미니 통장님이 몰라보신다. 이름을 대며 다시 한 번 나를 강조하니 통장님이 기겁을 하고 놀란다. 내 머리카락을 잘랐던 순경도 나를 보더니 아연실색하며 같이 놀란다. 맞다! 놀랄 만도 할 것이다! 의지의 한국인이 이렇게 서 있으니 말이다. 그 짧은 시간에 머리 깎고 사진을 찍어 왔다는 것이 보통 놀랄 일인가?

순경의 놀랐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지는 것을 보고는 조금 전의 놀람은 번지수가 다른 놀람이었음을 깨닫고는 눈앞이 깜깜해졌다. 그와 때를 같이하여 순경의 발길질이 들어오고, 주먹질에 당수에, 융단 폭격이 아닌 융단구타를 당했다. 옷에서 실밥이 터지도록 맞는 데도 말리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순경이 머리를 자를 때 밑에만 잘랐기에 머리를 박박 깍지 않아도 될 것을 반항심의 발로로 박박 깎았고, 악질적으로 면도도 하지 않았단다. 개전의 정은 애당초 없는 놈이고, 대한민국 국법 체계를 정면으로 거부하는 악질 중의 상 악질이라고 한다. 아니? 그럼 내가 반체제 인사란 말인가? 이 무슨 천부당만부당한 말씀인가?

나를 때리던 순경이 2라운드를 시작하려는지 장갑 낀 손에 침을 퉤퉤 뱉는 것을 보고는 죽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기적이 일어났다. 예수가 나타난 것이다 휴거(携擧)를 주창하는 교회에 안 나타나고, 이 불쌍한 죄인 아닌 죄인을 구원하려고 이곳에 재림하신 것이다. 가롯 유다의 배신으로 팔린 예수가 로마 법정에 끌려오듯, 턱 밑에 거뭇거뭇한 수염 자국을 한 긴 헤어스타일의 사나이가 끌려오고 있었다.

나는 이마만 덮었던 머리만으로도 이렇게 수난을 받았는데, 너 긴 헤어스타일의 예수 너는 죽었다. 머리도 나보다 어마어마하게 길지. 그리고 대한민국의 신성한 국법을 수행하는 경찰 아저씨가 오라는데 도망을 가? 그러니까 너는 도주로 인한 공무집행방해죄가 하나 추가되니 가중처벌법이 적용될 판이다. 너야말로 빗속에서 먼지가 나도록 맞게 생겼다.

옆에 있던 순경 한 명이 무엇을 중얼거리느냐고 하면서 또 나를 때린다. 이때 저녁 기간에 내가 근무하는 곳의 사장님 내외가 나탄 것이다. 오! 나의 메시아! 국법을 어긴 죄를 꿇어앉아서 회개하던 나는 급한 마음에 메시아의 치맛자락을 잡아당기며 할렐루야를 외쳤다. 이 죄인, 아니 그대의 직원을 구해 달라고 말이다. 갑자기 머리 박박 깎은 아저씨가 매어달리니 사모님은 졸도할 종도로 놀란다. 오늘 구월동 바닥에 놀라는 사람, 사태가 나는 것만 같았다.

메시아의 구원으로 기숙사라는 천당으로 승천하여서 거울 보니, 이번에도 얼굴이 완전 형질 변경되었다. 사장님께서는 나를 위해서 위로의 회식을 준비하면서도 뭐가 그리 우스운지 히죽히죽 웃어대고, 사모님은 얼굴이 파리해서 걱정스럽게 쳐다본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은 예의상 웃음 참느라고 얼굴을 찡그려 주는 것이 고맙기만 했다. 막거리 한 대접 들이켜고서 돼지비계 집어넣는 얼굴이 영락없이 수호지의 회화상 노지심이 얼굴이었다.

그 후로 한동안 총화단결이니 국민화합 소리만 들어도 다리가 후들거렸고, 머리 밑이 쭈뼛 서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아마도 고문(?) 후유증인가 싶었다. 어이! 노랗고 파랗고 뻘건 머리들, 너희들 좋은 세상에 태어났다. 박통 때 같으면 너희들은 죽고 또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도 모자랐을 것이다.

[전국매일신문 기고] 유재철 김포시 통진읍 도사리 꽃씨맘씨농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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