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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잔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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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잔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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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12.07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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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철 김포시 통진읍 도사리 꽃씨맘씨농장주

총은 군인들이 쏘고 잔소리는 여자들이 하는 줄 알았다. 군대 다녀오고 결혼을 하고보니 그 말이 맞기는 맞았다. 군대 다녀온 사람들은 알겠지만, ‘전투 수칙’여섯 번째에 ‘나는 단 한발의 탄약도 아끼겠다.’라는 항목이 있다. 그만큼 실탄을 아끼고 요긴하게 쓰라고 강조하는 소리였다. 결혼 후 나의 아내도 군인들이 실탄 아끼듯이 잔소리를 아끼면 전혀 문제가 없을 텐데, 그 놈의 잔소리를 묻자 흔한 미군들 총 쏘듯 해대니 환장할 노릇이다.

어떤 날은 조반 전부터 잔소리라는 총질을 해대는데, 타깃이라 할 수 있는 목표물이 아들 녀석일 때도 있고 딸일 때도 있지만, 그 총구는 거의 다 나를 향해 불을 뿜었다. 한번은 아들 녀석을 향해 총을 쏘아대는 옆을 지나가다가 당신도 똑같다는 소리를 들었다. 사선에서 얼쩡거리다가 튕겨 나온 유탄에 맞아버린 짝이 난 것이다. 싸우다가 총에 맞으면 전사로 분류되지만, 유탄에 맞아 죽는 것은 사망으로 취급된다.

아내 빼놓고 우리 세 식구가 총 맞을 짓을 하고 사는데 문제가 있다. 아내가 사온 옷을 아들 녀석이 고집 피우고 안 입다가 또 총 한방 맞았다. 건성건성 청소하면 딸아이도 두어 방 맞았고, 나는 뭘 그리 잘못한 일이 많았는지 셀 수도 없이 총을 맞았다. 아들 녀석의 방에서 총소리가 났다. 문틈으로 보니 뱀이 허물 벗은 것처럼 옷이 널브러져 있고 이불은 둘둘 말린 채로 구석에 처박혀 있었다. 아침에 늦잠 자느라고 비몽사몽간에 총을 맞았던 녀석인데, 아내는 학교 간 아들 녀석의 빈 방에서 연신 총질을 해댔다. 아내의 총구 앞에서 얼쩡거려 화를 자초한 일이 어이 한두 번뿐이었으랴, 신문지를 집어 들고 화장실로 숨어들었다.

총은 숨겨둔 채로 총구만 내놓고 쏴대는 통에, 확실한 총의 실체를 못 보았으니 함부로 총의 특성을 말할 수가 없었다. 총소리로 봐서는 반자동 총이 확실 했고, 총소리를 못들은 이웃들은 우리 집에서 총을 쏴대는지 전쟁이 났는지 도통 모르고들 사니 그들에게 물어 볼 수도 없었다. 단, 총의 성능은 나도 인정하는 바이다. 1960~70년대에 한국영화에 나오는 총들처럼 영화시작부터 끝까지 자동으로 총을 쏴대도 탄창 한번 갈아 끼는 것을 보지 못했다. 어림짐작으로 봐서는 바로 내 아내가 그 총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탄창도 갈아 끼는 것을 보지 못했는데, 몇 년째 총질을 해댄다.

개인용 화기총열에 여간해서는 사용 않는 양각대까지 부착하는 것을 봐서는 아주 작심을 하고 총을 쏘겠다는 모양인데, 왜 그런지 그 원인을 찾다가 그만 사색이 되었다. 책상위에는 금융기관에서 날아온 고지서가 보였다. 아내 모르게 땅을 저당 잡혀서 친구 사업자금으로 돌려줬는데, 이 친구가 이자를 내지 않아 독촉장이 날아온 것이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누구든 총구 앞에 서봐라. 서지도 못하고 아예 주저앉아버릴 것이다. 총구 앞에는 귀신도 안 붙는다는 말이 있다. 총구멍이 대포구멍처럼 커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을 그 제서야 알았다. 이럴 때는 삼십육계가 최고의 방법이라 문을 박차고 밖으로 튀어 날았다. 그와 동시에 난무하는 총소리가 들렸다. 총을 맞아 그러했는지 몸이 허공에 뜬 상태로 동작이 멈췄고, 총소리만 어지럽게 들렸다. 시간이 정지된 느낌이 들었다. 폴 뉴먼과 로봇 레드포드가 주연으로 나왔던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의 한 장면 그대로였다.

아내의 총질에 정신적인 영혼의 죽음을 당했지만, 육신은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겠다. 내가 무기가 없어서 가만히 당하는 줄 아는 것 같은데, 판단착오라는 것을 보여줄 때가 된 것만 같다. 핵폭탄에 버금갈 수 있는 이단옆차기를 날리는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한 가정이 지구상에서 멸망하는 것이다. 핵폭탄을 맞았으니 온전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강대국 밑에는 약소국이 있듯이 어린 자식들이 걸렸다. 핵단추 스위치에 얹었던 손을 힘없이 내려놓으며 생각 많은 사람의 비애를 느꼈다.

애들을 봐서라도 내가 죽어(맞춰) 살아야지. 어언 총상을 당했던 곳에 새살이 돋는데 또다시 총소리가 들린다. 전선야곡. 이제는 집안의 총소리가 나에게는 자장가가 되어 버렸다.

[전국매일신문 기고] 유재철 김포시 통진읍 도사리 꽃씨맘씨농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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