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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초보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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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초보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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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11.23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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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철 김포시 통진읍 도사리 꽃씨맘씨농장주

먼 논에 물꼬를 보기위해 차를 타고 가는데 뒤 유리에 ‘초보운전’이라고 붙인 작은 차가 국도의 가장자리 길을 조심스럽게 가고 있었다. 마치 얕은 물가에 올챙이가 꼬리를 살래살래 흔들고 지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나도 저러한 올챙이 적이 있었다. 옛날에 나는 갑자기 차를 샀다.

오후에 들이닥친 자동차 판매하는 후배에게 시달림을 당하다 결국은 승용차 한 대를 시장 통에서 물건 하나 사듯이 가볍게 사 버렸다. 아내와 한마디 상의도 없이 저지른 일이라 스멀스멀 걱정이 피어올라서, 전화기를 들고서 기선제압용으로 목소리를 깔아 붙이며 자동차를 샀으니 그리 알라고 못을 쳐댔다. 아침까지만 해도 말없이 차비 챙겨서 출근한 사람인지라,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 한다고 아내가 되받아쳤다. 그러면서도 공연한 소리 않는 성격을 잘 아는지라, 한두 푼도 아닌 차를 사면서 어찌 한마디 상의도 없이 샀냐며 내심 서운해 하면서 무슨 차냐고 묻는다. ‘코리아 피플 카’라며 백문이 불여일견이니 퇴근해서 보자고 전화를 끊었다.

저녁 퇴근길에 긴장이 앞섰다. ‘초보운전’부터 차 뒤 유리에 붙었다. 그 글씨가 부적이 되어서 나를 보호해 줄 것 같은 믿음이 갔는데도 선뜻 차를 올라타지를 못했다. 이럴 때 담배라도 피울 줄 알았으면 얼마나 도움이 될까. 차를 앞에 세워 높고 막연히 누군가의 도움이 그리웠다.

그때 친구 K가 생각났다. 친구 K는 2세대 면허소지자다. 2세대 면허란 운전자 옆 좌석에 경찰이 동승해서 판정을 기리는 시기를 말했다. 친구 K가 그 면허 소지자다. 그 당시 학원을 다녔던 친구를 비롯하여 여러 응시생이 봉고차에 가득 타고서 인천의 면허 시험장으로 시험을 보러갔다. 늦게는 도착했지만, 끝난 시간이 아니어서 순경의 짜증 속에 시험을 치르게 되었다.

친구 K가 자동차에 올라타서 삼십 미터도 못 갔는데 순경이 내리라고 소리를 쳐댔다. 어안이 벙벙해 위축돼 투덜거리며 내렸다. 인솔 해간 학원장이 축구경기 중 교체된 선수를 히딩크가 등 두드리듯 하는 폼으로 됐다고 하면서 흡족한 웃음을 띠우더란다. 도대체 뭐가 잘되었는지 모르는 의문 속에 며칠 만에 이 친구 운전면허증을 발급 받았단다.

친구는 이 면허증으로 공장에 취직을 했다, 어느날 사장과 함께 동승한 화물차를 익숙하지도 않은 운전 탓으로, 급브레이크와 급발진을 번갈아 밟아가며 김포시가지에 들어섰다. 초보운전에 화물차까지 낡은 탓으로 머플러에서 서툰 실력의 도계공이 닭 잡는 것처럼 푸더덕 소리가 연신 들리고, 시커먼 매연은 주먹질을 해대면서 나오더란다. 급출발 급제동으로 그 짧은 거리를 노는데도 목이 아픈데 옆에 탄 사장은 오죽했으랴 싶더란다. 사장이 인상이 험악해지면서 소리를 지르더란다. 그 한마디로 친구 K는 해고됐다. 친구 K는 삼십 미터도 주행 못해 보고도 면허를 취득하고, 그 덕분에 취직하여 삼백 미터도 못가서 해고되는 진기록을 수립했다.

초보운전으로 핸들을 잡고서 K를 생각하니 우습기도 하지만, 그 친구보다 낫겠다 싶은 용기도 생겨서 차를 무사히 집까지 타고 왔다. 마당 한구석에 조용히 세우려는 의도와는 다르게 마당에 깔린 자갈이 타이어에 짓눌려 바작거리는 소리가 났다. 전조등이 눈치라도 살피는 것처럼 살피는 것처럼 꿈벅하면서 꺼진 뒤로, 차는 마당 한구석에 웅크리고 있기만 했다. 못된 일 저지른 사람처럼 집에 들어가니, 집사람이 실망이 자심하여 이왕 장만하는 차 ‘코리아 피플 카’라는 긴 이름에 걸맞게 큰 차인 줄 알았더니, 안아서 옮겨도 될 만한 작은 차냐고 볼이 나왔다.

작은 차의 경제성과 실리를 연속극도 못 보게 해가며 해박한 지식을 동원하여 입에 침이 마르도록 설득을 했다. 민폐를 끼쳐가며 도로주행에 나서고 보니 영상기온인데도 도로는 살얼음판 같았다. 운전이란 것이 돌린 운(運)자에다 구를 전(轉)이라, 돌면서 구르는 것이니 만치 한시라도 마음 놓지 않고 초심을 잃지 말자는 뜻으로 그냥 놔두고 운전을 했다. 오랜만에 초보운전이라 붙인 차를 보니, ‘초보운전’이란 글씨가 햇빛에 색이 바랠 때 까지 부적처럼 뒤에 붙이고 다니던 나의 초보운전시절이 생각났다.

[전국매일신문 기고] 유재철 김포시 통진읍 도사리 꽃씨맘씨농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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