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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머리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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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머리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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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11.09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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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철 김포시 통진읍 도사리 꽃씨맘씨농장주

저 뭔 꼴인고? 제 부모가 물려준 고유의 머리 색깔 놔두고서 노란머리, 빨간 머리, 퍼런 머리, 완전히 천연색이다. 나이 든 사람들이 간혹 박정희 때가 좋았다고 말들을 하는데, 머리 물들인 녀석들 박정희 때 같았으면 좋기는커녕 뼈도 못 추렸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남의 얘기하는 것 같다. 하기야 나도 머리 때문에 뼈도 못 추릴 뻔한 일이 있었으니 말이다.

1975년쯤 되었을 때였다. 글을 쓰면서 보니 1975년과 1999년이 공통점이 있었다. 그때도 1999년도에 행하는 것처럼 주민등록 일제 갱신이 있었다. 지금 그 시대와 차이점이 있다면, 그 시대는 머리를 기르면 범법자 취급을 했지만, 지금은 머리가 길건 염색을 하건 간에 남의 머리 모양에 간섭을 하지 않았고, 사회적으로도 관용이 베풀어 졌다.

과거 우리의 지도자는 민주주의를 표방하면서도 국민들을 은근히 억압하였다. 정치적인 얘기는 차지하고라도, 불건전한 패션이라고 젊은 여자들의 치마 길이를 단속하는 법령을 만들기도 하고, 국책사업(?)의 일환으로 장발 단속도 하였다. 머리가 긴 젊은이들을 범법자로 만드는 것은 예사였고, 끌어다 꿇리고 단발령 때 왜놈들이 상투 자르듯 하는 상황이 재연된 것이다. 그 당시 파출소 옆 이발소자리 프리미엄이 엄청 뛰었다니 알아볼 만한 일이다.

서울이나 인천에 사는 학생이나 젊은이들이 레저용 자전거를 타고 강화도로 하이킹을 갈 때였다. 그 시절에는 자전거타기가 유행이었다. 당시에는 김포 사우삼거리에 검문소가 있었다. 검문소의 순경 아저씨가 보니 자전거를 타고 오는 어는 젊은 패거리들의 머리가 가관이라, 순경 아저씨는 위엄과 폼을 있는 대로 잡고 호루라기를 불며, 옆에 있던 헌병이 감탄할 정도의 멋진 제스처로 정지 신호를 보냈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순경의 호루라기 소리에 멈출 숙맥들이 아니었다. 한 떼의 젊은이들이 인디언 소리를 내지르면서 지체 높으신 순경 양반의 고함소리를 깔아뭉개고 내달렸다. 그 젊은이들로 인하여 사우삼거리에서 호루라기 하나로 사람들을 좌지우지했던 지존의 체면이 땅바닥으로 곤두박질 쳐버린 것이다. 흔히 사이클로 통하는 레저용 자전거라 허리 바짝 구부리고 엉덩짝 치켜들고 달리는 모습을, 힘없는 보안관이 인디언들이 타고 잔뜩 소란피우다 달아나는 말의 엉덩짝 보듯 하고 말았다.

당시에 김포에는 우회도로나 제방도로도 없이 단순히 48번국도 하나만이 강화 가는 길의 전부였다. 김포시가지를 야호 소리를 내지르며 인디언 흉내를 내던 사이클 무리들이, 경찰서 앞 도로에 가로질러진 바리게이트를 보고서 아연실색했을 때는 이미 때가 늦었다. 사우검문소에서 띠운 무전을 받은 경찰서에서 바리게이트를 치고 저인망 그물로 싹쓸이 고기 잡듯이 사이클을 싹 몰아 잡은 것이다. 그 옆의 중앙이발소에서는 떼를 지어 퍼더덕 거리는 고객들을 보고는 회색이 만연했다.

그 시절 나는 인천 구월동의 작은 가내공장에 다니고 있었다. 대한민국 국민은 자기의 주거지에서 주민등록증을 갱신하라는 칙령이 전국적으로 발되었다. 그와 비슷한 법령이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에도 발효되어, 주민등록증을 만들러 가느라고 임산부인 마리아도 억수로 고생했다고 성경책에 나와 있는 것을 보았다.

천성적으로 내 몸 관리하는데 게으른 나는 그날 점심시간에 반주까지 곁들여서 잘 먹고, 두 시간 휴가 내어 사진 두 장 지참하고 동사무소로 주민등록증을 갱신하러 갔다. 내가 사는 동네 통장님께 인사하고 사진을 내미니, 통장님께서 사진의 얼굴에 앞머리가 이마를 가리었으니 앞머리를 조금 깎고서 사진을 다시 찍어 오라고, 한쪽에서 지문을 찍는 순경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말했다.

그런데 경찰이라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란 특성상 남의 작은 소리는 더 의심을 하는 것이 생리라, 그 좋은 먹잇감의 수군대는 소리를 어이 놓치겠는가 말이다. 네 죄는 네가 더 잘 알 것이니 말이 필요 없다. 다짜고짜 끌어다 때리는데, 옆머리 잡아당기는 것이 그렇게 아픈 줄 그때 처음 알았다. 순경 구둣발에 맞아서 아픈 것은 아예 아픈 측에도 못 끼었다.

[전국매일신문 기고] 유재철 김포시 통진읍 도사리 꽃씨맘씨농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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