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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아내가 없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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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아내가 없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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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11.30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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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철 김포시 통진읍 도사리 꽃씨맘씨농장주

살아가면서 어느 때인가 한 번쯤은 일상을 벗어나서 여행을 하고 싶다고 아내가 말한 적이 있었다. 바로 어제, 아내는 틀에 박힌 일상에서 벗어난 사람들 몇이서 기차여행을 떠났다. 얼마나 기다렸던 날이었나? 아내 없이 홀가분하게 지낼 수 있다는 날이, 일요일 맞은 아이들 기분 같았다.

언젠가 독수공방하는 친구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방문을 연 순간, 방안에 자유가 넘쳐흐르는 것이 한눈에 들어왔다. 먹다 남은 술병은 머리맡에서 휴지로 막힌 채 있었고, 라면봉지는 방 윗목에, 발치께로 밀어놓은 이불은 자유의 분방함을 강조했다. 방바닥에 딩구는 책들은 펴들면 재미를 선사했고, 모아서 포개 베면 편리함을 제공하는 베개로 용도를 바꿔가며 사용되었다.

이제 나도 아내가 떠나고 없는 방에 자유를 쫙 깔아놓고 뒹굴러 보는 것이다. 오늘 아침에 아내는 여행을 떠나면서도 무엇이 그리도 못미더웠던지, 당부하는 말이 끝이 없었다. 출발시간 늦지 말라며 아내의 등을 떠밀다 시피하며 보냈다. 아내가 기차여행을 하는 그 시간에 나는 술병을 머리맡에 놓고, 책을 펴들고서 나만이 누릴 수 있는 자유를 한껏 누렸다. 그 아까운 시간을 잠으로 축내고 싶지 않아서 대보름날 밤에 잠들면 눈썹이 희어질까봐 잠 못 드는 어린 시절처럼, 안절부절 못하다 결국 잠이 들었다.

다음날 눈을 뜬 후로 아내에 대해서 너무 많은 것을 알아냈다. 방학이라 그런지 아이들이 교회에 갈 시간인데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이들을 넘어 다니면서 소리를 질러 아이들을 깨워서 교회에 보냈다. 아침마다 아내가 지르는 소리에 교양 없이 큰 소리나 친다고 했었는데, 오늘 아침 애들 깨우는 내 목소리는 아내가 아침마다 지르는 교양 없는 소리보다 더 크면 컸지, 결코 작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내가 아침마다 지르는 큰 소리의 뜻을 이제야 알았다.

방안의 어지러움을 자유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게으름과 방종의 부산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집안청소를 하느라고 걸레질을 해대는데, 방바닥이고 마루 바닥에 머리카락 빠진 것이 그렇게도 많은 것에 놀랐다. 아내의 집안 청소하는 일이 왜 그리 더뎠었는지 그것도 이제야 알았다.

교회에 다녀온 애들과 함께 밥을 먹었다. 녀석들이 밥을 먹다가 남겼다. 개를 주자니 개밥그릇도 꽉 차서 마땅치가 않아 결국은 그 밥을 내가 다 먹었다. 아내가 왜 살이 찌는지 그 이유를 이제야 알았다. 저녁을 차려서 아이들과 함께 먹으려 하니 아이들이 밥 생각이 없다 한다. 밥상에 혼자 앉아서 찬밥 한 숟가락 떠 넣으니 모래 씹는 것 같았다. 숱갈 내려놓고 소주 반병 따라 마시는 것으로 저녁을 대신했다.

결혼 못하고 혼자 사는 친구나 동네 홀아비 형님들이 왜 그리 술에 젖어 사는지 그 이유도 알았다. 더운 복중인데도 어딘지 모르게 허전하고 으스스했다. 아마 그것도 옆에서 치근덕거리는 아내가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내가 없는 짧은 동안에 나는 이렇게도 아내에 대해서 너무 많은 것을 알아냈다. 그렇지만 아내에게 차마 말은 못하겠다.

컴퓨터를 하는 애들 등 뒤로 가서 “네 엄마 언제 온대냐?”물었다. 아들 녀석이 이상하다는 듯이 “어제 가셨으니 오늘 오시는 날 아녜요?”했다. 텔레비전 한 프로 끝나고 어슬렁대며 애들한테 가서 습관처럼 또 물어보려다 얼른 입 다물고 돌아섰다. 네 엄마 어디쯤 오냐고 하는 말이 입안에서 달싹거렸는데 말이다. 늦은 시간에 아네가 여행에서 돌아와 여장을 풀었다.

나 없는 동안에 집안에 별고 없었냐고 아내가 물었다. 집나갔던 사람이 무슨 일이 있었겠지, 집에 있는 사람이 무슨 일 있겠냐고 하면서 오늘 겪었던 일을 얘기하려다가 얼른 입을 닫았다.

그 말만 해 봐라. 아내는 득달같이 “거 봐라! 내가 집을 비워서 혼 좀 났을 것이다. 티도 안 나는 일로 당신 모르게 얼마나 고생을 하는데․․․.”하며 유세를 떨 것은 뻔한 일이다. 내가 속으로 휴! 하며 안도의 숨소리를 몰아쉬는 것을 안내가 놓칠 리가 없다. 무슨 일 있었지? 말해 봐 말 해봐 하는 것을 나는 음주 측정하는 경찰 앞에서 입 안 열려고 숨 들이키는 사람처럼 흠! 흠! 거리며 입 꽉 다물고 숨만 들이 키고 있었다.

[전국매일신문 기고] 유재철 김포시 통진읍 도사리 꽃씨맘씨농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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