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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01.11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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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철 김포시 통진읍 도사리 꽃씨맘씨농장주

동절기 채소재배를 위해 들판에 비닐하우스를 설치했다. 하우스 뼈대용인 철 파이프에 비닐을 씌우기 위해서 새벽 네 시에 일어났다. 낮에는 바람이 불어서 비닐을 씌우지를 못한다.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기위해서 잠자고 있는 아내를 두어 번 넘어 다닌 것이 그만 화근이었다. 잠자던 아내의 다리를 밟은 것이다. 잠결에 신음소리를 내며 실눈을 뜨더니 예의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귀신 버렁탱이 같은 그놈의 옷 좀 입지 않을 수 없냐는 둥, 머리에 얹힌 까치집은 언제 헐어 버릴 거냐는 둥, 나는 잔소리를 들어 싸다고 생각했다.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리는 우에 버금갈 짓을 했으니 말이다. 잠자는 사람의 다리를 밟다니.

작업하기 편해서 입는 옷을 나무라더니, 면도는 왜 안 하냐고 하는데, 얼굴의 꺼칠한 수염은 왜 탓을 하나? 관우, 장비는 수염만 길었어도 싸움만 잘했다던데, 저러고 다니니 모르는 사람이 보면 마누라도 없이 홀아비로 사는 줄 알 것 아니냐 하는 소리를 들으며 문을 나섰다.

그믐달은 서녘에서 희미한 빛을 흘리고, 멀리 아파트의 불빛도 꺼져서 어설피 매달린 가로등 불빛만 바람에 두리번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트랙터와 경운기가 새벽에 고성을 울리며 동네 사람들을 다 깨우다시피 하면서 줄을 서 들로 나갔다.

근 열흘 동안이나 어두운 새벽에 설쳐댔으니 이제는 지칠 만도 한데, 오늘이 품앗이 마지막 날이라고 동변리 이장님이 크게 한턱 쓰는 셈치고 개를 한 마리 내놨다. 어둠 속에서 비닐이 허옇게 펴지고, 된장국물 속에서 나는 개고기 냄새 맡은 경운기가 쇳소리를 캥캥 지르며 흙 밭을 일구어 나갔다. 마지막 날이라고 남았던 힘까지 소비하며 그날의 일은 다른 날보다 좀 일찍 끝이 났다.

이제는 보신용 개고기 먹는다는 큰일이 남았다. 고기를 썰고, 술을 따르면서 형님 먼저 아우 먼저, 권커니 잣커니 하며 한창 술자리가 무르익는데, 흥이 없을 것 같다 하여 창고에 있는 앰프까지 틀어댔다. 그때 이장님께서 심각한 표정을 짓더니 느닷없이 중신 좀 서라는 말을 비쳤다. 이장님은 장난이 아니라는 말을 전제로 진실성을 새삼 강조하더니, 자네 동네 걸포리에 참한 사람 있으면 중신 좀 서라고 말했다.

차 배달 온 아가씨가 그렇게 착실할 수가 없더란다. 착실한 아가씨가 다방에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렸었는데, 이 기회에 참한 사람 소개 좀 하란다. 순간 조용해진 가운데, 그중 한 사람이 멀리 갈 것도 없이 이 자리에도 참한 사람이 있다고 말했다. 둘러보니 동생 친구 K가 있었다. 그는 학교 다니는 딸을 두고 홀몸으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사람들은 K의 심사를 헤아리듯이 이름을 대기가 뭣해서 잘해 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술자리도 거의 끝나 갈 무렵이라 집에 할 일도 있고 소변도 마렵고해서 양해를 구하고 먼저 일어섰다. 자전거를 타려는데 아가씨가 부리나케 쫓아 나오더니, 나를 잡고서 자기의 처지를 얘기했다. 자기는 아가씨가 아니고 딸을 하나 둔 사람이며, 주방에서 일을 하는데, 다방에 근무하는 아가씨가 결근을 해서 부득불 오늘 처음 배달을 나왔다는 말과 함께 자신의 얘기를 곁들여 했다.

그러한 말을 하필 왜 나에게 하나? 어느 모로 보나 내가 중신을 설정도의 위인으로 보이지도 않을 텐데 난감하기 그지없다. 그때 아침에 아내가 한 말이 갑자기 떠올랐다. 남들은 내가 하고 다니는 꼴을 보면 마누라도 없이 혼자 사는 홀아비로 볼 것이라는 말이 생각난 것이다. 그렇다면 이 아가씨가 나를 홀아비로 알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순간 아랫도리가 팽팽해졌다. 빈혈이 다 날 지경이다. 급한 마음에 이따가 저녁에 만나서 얘기하자고 말했다.

급히 자전거를 타고 하우스 모퉁이를 돌았다. 아가씨가 보이지를 않자 급히 허리춤을 풀고 소변을 봤다. 오줌보가 터질 뻔했다. 이것 터졌다가는 아가씨는커녕 집에 있는 아줌마도 건사 못할 뻔 했다.

오늘 같은 불상사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홀몸이 아닌 임자 있는 사람임을 알리는 방법을 찾아야겠다. 그나저나 헛소리 않는 사람으로 동네 사람들이 인정을 하는데, 이따가 저녁에 어떻게 하나? 걱정되네.

[전국매일신문 기고] 유재철 김포시 통진읍 도사리 꽃씨맘씨농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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