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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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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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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12.28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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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철 김포시 통진읍 도사리 꽃씨맘씨농장주

아내가 부시럭거리며 점퍼를 꺼내 초등학교에 가는 아들 녀석에게 입히느라고 실랑이다. 녀석은 투박한 점퍼가 싫은지 제 엄마하고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 점퍼의 앞 지퍼를 잠그지 않고 나섰다. 학교에 난로불은 피냐고 아들 녀석에게 물어보니 녀석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요즘 난로 피는 학교가 어디 있어요? 요즈음은 스팀이에요.” 하며 학교로 향했다.

난로? 그렇지, 요즈음 난로가 있을 턱이 있나? 40여 년 전 내가 학교 다닐 때의 얘기다. 겨울이면 추워서 아침에 허리를 웅숭그리며 교문을 들어서 운동장을 걸으면서, 제일 먼저 우리 반 교실 밖으로 빠져나온 난로 연통부터 확인하는 버릇이 있었다. 누렇거나 허연 연기가 꾸역꾸역 나오는 것을 보면 틀림없이 조개탄에 불을 붙이기 위한 불쏘시개에 불이 붙는 중일 것이다. 연통에 실연기 가닥하나라도 피어오르지 않는 날은 당번의 불붙이는 실력이 시원치 않아서 얼굴과 손에 검댕이 칠만 하고 불을 제대로 피우지 못하는 중일 것이다.

그 어는 날 교문을 들어서며 올려다본 우리 교실의 연통에서 파란연기가 포슬거리며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오늘 당번이 제대로 불을 붙여 벌써 조개탄에 불이 붙어 조개탄 타는 연기가 올라가는 것이다. 오늘 당번 녀석들은 필시 겨울방학 동안에 들판에서 불장난으로 시간이나 때운 걸포리 녀석들일 거라고 으스대며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난로를 쳐다보니 생각보다 수월하게 불이 붙어서 난로불이 괄하여, 그날 지급된 조개탄이 수업 시작하기도 전에 완전히 불이 붙어 무쇠난로를 벌겋게 달구고 있었다.

수업하러 들어왔던 선생님이 조개탄의 빈 양동이를 들여다보고는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조개탄을 아끼지 않았다며 당번부터 혼을 냈다. 조금 전까지 득의만만했던 당번들이 풀이 죽어 함석 양동이를 들고 석탄창고에 가보니, 각 교실에 조개탄 지급을 끝낸 급사 아저씨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오후수업까지 해야 하는데, 2교시가 채 끝나기도 전에 무쇠난로의 벌겋게 달궜던 부분이 식어가고, 아이들은 추워서 점차 사타구니에 손을 넣고 노기 서린 선생님의 눈치만 살폈다. 화가 난 선생님이 급기야는 아이들을 타작했던 지휘봉으로 몇몇을 지목하여 나무를 해 오라고 밖으로 내좇았다.

나를 포함한 몇 명의 면면을 보니 입학해서 사 학년인 이때까지 한글 못 깨우치고 구구단 못 외우는 녀석들이다. 사 년을 공부하고도 깨우치지 못한 놈들이 하루를 앉았다고 깨우칠 리는 만무하다는 것을 알고 그러셨을 것이다. 나무를 해오라고 밖으로 내몰렸지만, 어린 우리들이 없는 나무를 구하기는 힘들었다. 산에서 나무하는 것을 포기하고 집 주위를 돌면서 남들이 해 놓은 나무를 훔치기로 했다. 한 시간여 만에 모이고 보니 저마다 해온 나무가 꽤나 많아 보였다. 나무뿌리를 캐서 쪼개 말린 것, 과일 궤짝분해해서 묶은 것, 나무기둥을 자른 것 등을 등에 지고 고려공원 고개를 넘는 것이, 과거보러가는 이 도령 괴나리봇짐처럼 보였다.

선생님께 장작을 주어왔다고 말하고 불을 짚었다. 불꽃과 함께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찌르기 시작했다. 말라붙은 인분 타는 냄새 같기도 하고 지린내가 졸아 붙는 냄새 같기도 한데, 그 고약함에 구토가 날것만 같았다. 우리가 해온 나무 중에 변소 발판으로 사용했던 나무가 섞여 있었던 것이다. 통풍을 위해서 복도 쪽 창문을 열었는데, 냄새가 복도를 타고 건물 한 개 동에 있는 각 교실 전체로 파고 들어갔다. 각 교실에서도 냄새 때문에 난리가 났는데, 선생님들이 냄새의 출처를 찾느라 문을 열고 나와 두리번거렸고 아이들은 각 교실 문으로 내다보는 것이, 한창 달리던 기차기 갑자기 정차하자 궁금하여 차창 밖으로 내다보는 승객들처럼 보였다.

우리교실에서는 급히 양동이의 물을 난로 불에 부었다. 물 뒤집어쓴 난로에서는 증기기차 하체에서 수증기 나오는 소리처럼 연신 지지직거렸고, 창문으로는 기차의 수증기처럼 연신 김이 새어 나왔다. 아이를 등교시키고 옛 생각을 하고 앉았는데, 오르는 기름 값을 당할 수가 없어서 대체용으로 무쇠난로를 찾는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내 추억의 무쇠난로가 현실로 나오는 것이다.

[전국매일신문 기고] 유재철 김포시 통진읍 도사리 꽃씨맘씨농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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