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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검색과 사색(思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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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검색과 사색(思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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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8.17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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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 언어철학자·시민사회신문주간

박근혜 때 그 ’피습남’의 부활인가-교사 피습男

박근혜 커터칼 피습(2006년) 송영길 쇠망치 피습(2022년), ‘테러’ 때마다 언론 한 귀퉁이에 고개 내밀던 ‘피습남’이란 말, ‘뜻을 알고 말을 쓰세요.’ 고언(苦言) 아끼지 않았지만, 또 나왔다. 이번엔 ‘교사 피습男’이다.

언론의 ‘말’은 공공(公共)언어다. 공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 그 말의 필자나 화자(話者), 그 들의 언론사도 같다. 언어의 속뜻 챙겨온 이 책상물림은 무안하다. 내 노력이 부족했구나...

‘스승 찾기’로 학교 알아낸 교사 피습男...’ (대전일보, 8월 9일) 최다인 기자의 기사다.

교사를 습격한 남자가 범행 대상을 ‘스승찾기 앱’으로 찾았다는 뜻으로 읽는다. 헌데 피습男은 뭐지? 피의자가 습격을 당했다 즉 피습했다? 교사가 흉기로 범인(피의자)를 찔렀다고?

지식의 방법, 첫째는 글자(가 가진 의미)를 아는 것이다. 저 ‘피습男’이 사전(辭典)이나 교과서가 가리키는 뜻과 다르면, ’가짜 지식’이다. 가짜 지식으로 만드는 언론은 무얼까?

바늘귀 작은 흠집 꼬투리 잡고 너무 호들갑 떨지 말라고? 허나 그 흠집 문자로 (언론의) 독자는 세상을 본다. 이 기록이 인터넷 세상에 점철(點綴)되면 ’바늘도둑 소도둑’이 문제 아니다.

저 기자도 어디선가 피습男의 그런 용법(用法)를 보고 부지불식간에 머릿속에 심었을 수 있다. 아니면 검색으로 얻은 ‘지식’일까? 비슷한 뜻이려니 짚은 것이 저런 참사로 이어졌겠다.

언젠가 이런 식의 ‘충고’를 한 적이 있다. “그래요? 사소한 말의 차이네요.” 여성 기자인 ‘그’의 답변에 크게 당황했다. 말이 사소하다? 차이가 사소하다?

바로 저 ‘사소한’ 말 한국어로 문학도 하고, 철학도 한다. 물리학도 수학도 공부 시발점은 언어다. 외국어에 뛰어난 분들이 상당수다. 그러나 그들도 대개 모국어(母國語)로 생각한다.

노벨상에는 몇 개 분야가 있다. ‘사소하지만’ 뜻이 비틀린 모국어로 시작(생성)된 어떤 분야의 작품(성과물)이 보편 인류의 존경을 얻을 수 있을까?

클릭 즉 검색(檢索)만으로 지식을 이룰 수는 없다. 검색의 결과는 사색(思索)의 여러 재료 중 하나다. 독서와 교육, 경험 등이 합쳐져서 (그 사람의) 생각의 용광로 속에서 지식은 빚어진다. 생각하고 되새김질하여 찾는, 사색이다.

팩트체크가 세상의 논제가 되는 것도 관련 있다. 검색만으로 (베껴서) 보고서 만드는 지식의 방법을 경계하는 이유다. 특히 언론은, 지식의 세계와 같이 ‘좋은 게 좋을 것’이면 안 된다.

이런 주제, 누구나 지적하는 ‘공자님 밀씀’이다. 그러나 ‘피습男’ 문자를 톺아보면 새 느낌을 갖게 된다. ‘습격(襲擊)을 당한(被 피) 남자’의 被는 원래 이부자리의 하나인 이불이다. 의(衣 옷)와 피(皮 가죽)의 합체다. 형성(形聲)이라는, 한자가 새로운 문자를 빚는 방식 중 하나다.

이불과 ‘당하다’는 의미 사이의 간격을 이해하자. 클릭(검색)에서 놓치는 대목이다. 이걸 우리 (언론) 사회가 알았다면 ‘피습남’의 저런 어리석은 활용사례는 없었을 것이다.

인터넷 한자사전에는 어원(語源)인 그림이 나온다. 그 그림이 수천 년 세상에서 닳고 닳아 디자인(도안)이 가지런하게 된 것이 상형문자인 한자다. 그래서 한 자 한 자가 각각 하나의 단어인 한자 단어의 뜻은 원래의 그림에 있다. 그 그림, 신기하고 재미있다.

그 그림 읽는(보는) 방법이 문자 속 터득(攄得)하는 이치다. 이불은 옷이다. ‘입을 被’라고도 하는 것이다. 옷 뒤집어쓰는 모양, 과부보쌈이라는 옛 풍속도 상상해 보자. 이불과 ‘입다’와 ‘당하다’의 사이, 이렇게 가깝다. 언어적 상상력이고 시적(詩的) 은유의 시발점이다.

기자의 언어는 제 뜻 펴는 도구이자 무기다. 낡고 녹슬면 밥벌이 다 한 것이다.

[전국매일신문 칼럼] 강상헌 언어철학자·시민사회신문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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