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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화의 e글e글] 바보 박사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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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화의 e글e글] 바보 박사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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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02.08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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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화 성남미래정책포럼 이사장

평생동안 봉사활동을 하며 살다 가신 장기려(張起呂, 1911~1995년) 박사를 아는 분들은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행적을 소상히 알고 있는 분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장 박사는 평안북도 용천(龍川)에서 한학자였던 부친 장운섭(張雲燮)과 모친 최윤경(崔允卿)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부친이 설립한 의성초등학교를 거쳐 1928년, 개성에 있는 송도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그 해에 경성의학 전문학교에 입학하여 1932년에 수석으로 졸업하였다. 졸업 후 경성의전 외과학 교실의 조수로 일하는 동안 한국 외과계의 권위자 백인제(白麟濟) 교수의 제자가 되었고, 1932년 내과의사인 김하식의 맏딸 김봉숙과 결혼하여 슬하에 3남 3녀를 두었다.

그리고 1938년 경성의전 외과학 강사로 근무하다가 경성의전 입학 당시 돈이 없어서 의사의 진료를 받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의사가 되겠다던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1940년 기독교 계열의 평양 기휼병원 외과 과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1940년 9월 “충수염 및 충수복막염의 세균학적 연구”로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 후 그는 교육 및 학술활동에 적극 참여했다. 1943년 간상변부(肝傷頸部)에 발생한 간암의 설상절제(楔狀切除)수술을 실시하고 그 결과를 조선의학회지에 발표하여 주목을 받았으며, 1947년 평양의과대학 외과학 교수 겸 부속병원 외과 과장, 1953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외과학 교수, 1956년 부산대학교 의과대학 외과학 교수 겸 학장, 1965년 서울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외과학 교수 등으로 재직하였다. 장 박사는 경성의전부속병원 근무 시절인 27세 때 척추결핵으로 입원했던 춘원 이광수(李光洙)의 주치의를 맡았는데 그 인연으로 춘원 이광수는 장 박사를 1938년에 쓴 소설 『사랑』의 남자 주인공 “의사 안빈 박사”의 실존모델로 삼았다고 한다. 

이렇게 화려한 경력을 쌓았던 그는 1951년 경남구제위원회의 전영창(全永昌) 목사와 한상동(韓尙東) 목사의 요청으로 부산 영도구 남항동에 위치한 제3교회에서 무료진료기관인 복음병원을 설립하였다. 장 박사는 1976년까지 25년간을 그 복음병원 원장으로 봉직하면서 1968년에는 청십자의료보험조합을 발족시키고 영세민들에게 의료복지 혜택을 주기 위한 기틀을 마련하였으며 1975년에는 의료보험조합 직영의 청십자병원을 개설하였다. 그리고 이듬해인 1976년에는 한국청십자사회복지회를 설립하였다. 그런 그의 지역사회봉사활동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1979년에는 막사이사이 사회봉사상을 수상하였다.

6.25전쟁이 일어난 1950년, 장 박사는 철수하는 군인들의 손에 이끌려 아내와 5남매를 북에 둔 채 둘째 아들만 데리고 월남하였다. 그리고 부산에서 천막을 치고 복음 병원을 세워 행려병자를 치료했다. 곧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가족들은 휴전선이 가로막혀 영영 볼 수 없게 되었다. 장 박사는 늘 북에 두고 온 가족들을 그리워하면서 “내가 누군가를 도우면 반드시 누군가 북에 있는 내 가족을 도울 것이야”라는 믿음으로 봉사활동에 앞장섰다. 그런 믿음으로 장 박사는 가난한 사람을 위해 평생을 바치겠다는 다짐을 하며 하루 200명이 넘는 환자들을 돌보았다. 

그렇게 한없이 베풀기만 했던 장 박사를 두고 춘원 이광수는 “성자 아니면 바보”라 했다고 한다. 이광수가 왜 장 박사를 “성자 아니면 바보”라고 했을까? 성자와 바보는 순수하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이광수는 바로 이 점을 중시했던 것이 아닐까? 

지금 우리 사회에는 출세와 재물을 위해 발벗고 나서는 똑똑한 사람들이 정말 많다. 그러나 장 박사처럼 바보스러울 만큼 똑똑하고 훌륭한 사람은 정말 찾아보기 힘들다. 온갖 인간적, 도덕적, 인륜적 악취를 다 풍기면서도 권력 챙기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대통령 후보자들을 보고 있자니 “바보 박사 장 박사”가 더욱 그립다.

[전국매일신문 칼럼] 윤병화 성남미래정책포럼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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