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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席] 위기 임산부에 대한 지원 강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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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席] 위기 임산부에 대한 지원 강화해야 한다
  • 최재혁 지방부국장
  • 승인 2023.07.13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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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 지방부국장

인구절벽으로 소멸국가 1순위로 꼽히는 대한민국이 신생아 하나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후진 행정국가였음을 참담히 느끼는 요즘이다. 지난달 경기 수원에서 냉장고에 시신이 유기된 출생 미등록 영아 사건 이후 소재가 파악되지 않는 아동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5일 출산 기록은 있으나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이른바 ‘유령 영아’ 사건을 420건 접수해 400건을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이는 전날 오후 2시 기준으로 각 지자체의 조사 결과에 따라 출생 미신고 아동은 급증할 가능성이 크다.

경찰은 이미 접수된 출생 미신고 아동 가운데 15명은 사망한 것으로 확인했다. 이중 8명은 범죄 혐의가 발견돼 경찰이 수사에 들어갔다. 이번 ‘유령 영아’는 감사원이 지난 3월부터 실시한 보건복지부 정기감사에서 찾아냈다. 2015∼2022년 국내에서 태어난 영유아 중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인원은 2236명이나 됐다. 이 가운데 생존 여부가 불투명한 23명을 추려 해당 지자체를 통해 확인했더니 영아를 살해하고 유기한 사례가 속속 드러났다. 사망 과정도 잔인하다. 수원 냉장고 시신은 첫째와 둘째 아기를 출산하자마자 살해한 것이고, 경남 창원에선 생후 76일된 여아가 방치돼 영양 결핍으로 숨졌다.

생후 5일된 영아가 살해됐는가 하면, 숨진 아기를 아무 곳에나 유기한 사례도 비일비재했다. 모두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은 아동들이다. 신생아 등록 체계가 미비하다 보니 조장된 살해사건들인 셈이다. 지금까지의 가족관계등록법은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으면 정부는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설사 발각되면 과태료 5만 원 내는 게 전부였다. 때문에 출생신고 필요성이 입법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지만 국회와 정부는 뒷짐만 졌다. 뒤늦게나마 국회는 지난달 30일 ‘출생통보제’를 통과시켰다. 의료기관이 신생아의 출생 정보를 지자체에 의무적으로 알리는 제도다. 하지만 이는 반쪽짜리 방안이라는 지적도 있다.

병원 밖 출산의 경우 파악이 쉽지 않아서다.지난달 수원의 한 아파트 냉장고에서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신생아의 시신 2구가 발견된 것을 계기로, 정부가 출산기록은 있지만,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유령아동’이 실제 생존해 있는지 전수조사에 나선 것이 그 계기가 됐다. 감사원이 2015년부터 2022년까지 태어난 신생아 중 출생 기록은 있지만 출산신고는 되지 않은 아동 2236명 중 1%인 23명을 표본 조사한 결과 최소 3명은 숨졌고, 1명은 유기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발표했다. 즉 아이를 낳고 신고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버리거나 죽음에 이르게 만든 사례가 있음을 의미한다.

임시 신생아 번호, 신생아의 생년월일과 성별을 표기한 7자리 숫자다. 병원에서 출산 직후 신생아에게 놓는 B형간염 예방접종의 기록이기도 하다. 세상에 태어나 일곱자리 숫자로만 기록된 채 사라진 아이들이 연간 200~300명에 달한다고 한다. 거제의 한 아이는 생후 5일 만에 부모에 의해 죽임을 당했고, 창원의 한 아이는 생후 76일 만에 영양실조로 숨졌고, 수원의 한 남매는 자신의 집 냉장고 안에서 발견됐다. 국가와 인종을 막론하고 아이의 탄생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정치적으로 아이의 출산을 통해 인구를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은 공동체의 세금 수입과 국방을 위해서, 경제적으로 산업혁명 직후까지 노동력을 공급하기 위해서 매우 중요했다. 특히 농업의 경우 기계화 이전까지 인간의 노동력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산업이었고, 기계화가 많이 이루어진 현대 사회에서도 농업 인구는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소위 ‘필요’에 의한 것이 아니더라도, 아이의 출산은 많은 인고(忍苦)와 여성의 생명을 건 출산의 과정을 거친 결과이며, 생명 자체의 소중함으로 인해 매우 숭고한 행위로 평가받는다. 그러므로 아이의 출산은 기쁨이요 축복이었으며, 각종 문화적·종교적 유산(遺産)을 만들어냈다.

조선시대에도 아이를 버리는 행위에 대한 엄벌과 버려진 아이에 대한 대책이 존재했다.기본적으로 버려진 아이는 제생원(濟生院, 훗날 혜민서(惠民署)로 이름이 바뀌었다)에서 돌봤다. 특히 세조 12년(1466)에는 숭례문 밖에 아이를 버린 사람을 잡아 국문하기 위해서 의금부(義禁府), 사헌부(司憲府), 형조(刑曹)가 동원됐다. 심지어 이 버려진 아이가 혜민서에서 치료를 받다가 사망하자, 세조는 아이의 치료를 담당했던 혜민서의 관리를 잡아다가 국문하기까지 했다. 이러한 제도는 근대까지 이어져서, 고종 32년(1895)에 내무아문(內務衙門)에서 각도에 전달한 훈시(訓示) 13조에 “내버린 아이를 반드시 법을 마련하여 기를 것”이라고 명시돼 있다.

아이를 버리는 이유는 예나 지금이나 크게 차이가 없어 보인다.정부가 ‘출생통보제’를 통해 출생신고 전 사라지는 소위 ‘유령 아이’ 문제 해결에 나섰다. 의료기관장이 아이의 출생정보를 의무적으로 통보하도록 하는 제도다. 이미 여러 선진국에서 시행되고 있고, 21대 국회에서도 15개의 관련 법안이 발의됐지만 정쟁에 묻혔던 안건이다. 일곱 자리의 숫자로만 부를 수밖에 없는 아이들, 부모도 세상도 지켜주지 못한 아이들이 ‘제2의 유령 아이’들을 위한 최소한의 보호망을 만들어 준 셈이다.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는 아이들을 지켜주는 일은 어른의 도리이자 책무다.

현상을 더 깊고 넓게 들여다보고 더 안전한 체계를 구축하는 일은 우리 사회의 역할이다. 신생아번호도 없이 병원 밖에서 태어날 아이들과 불법으로 출산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상황의 부모들까지 고려한 심도 있는 정책을 모색해야 하는 이유다. 영화 ‘브로커’는 소영이 아이 우성을 베이비 박스에 버리면서 시작된다. 소영은 다시 우성을 보러 가지만, 이미 인신매매 브로커 일당의 손에 아이가 넘어간 뒤다. 소영은 책임감인지 죄책감인지 모를 감정으로 브로커 일당과 함께 우성의 양부모 찾기를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아이를 한 번 안아주지도 않던 소영은 어느날, 어두운 방 안에서 읊조린다. “우성아, 태어나줘서 고마워.” 세상에 태어난 아이는 모두 고마운 존재다. 부모가 원하든 아니든 태어난 한 생명에 대해 마음껏 고마워할 수 있는 사회를 꿈꿔 본다. 일단은 감사원이 확보한 명단 속 아기에 대한 전수 확인이 시급하다. 복지부의 전수조사는 당연하다. 보다 근본적으론 출생통보제가 시행될 수 있도록 의료계가 협조해야 한다. 공공 업무를 민간에 떠넘긴다 할 게 아니라 가장 효율적이고 정확한 방법을 찾는 게 맞다. 정부와 정치권에서도 법 개정을 서둘러 이를 뒷받침해야 한다.

아무리 부모라도 자식 생명까지 마음대로 빼앗을 수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도록 자녀 학대 방임 살해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처벌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아기를 살해한 부모들은 대부분 ‘양육 능력이 안 돼서’라는 이유를 들고 있다. 정당화될 수 없는 변명이지만 ‘영아 범죄’를 막기 위해선 미혼모 등 위기의 임산부를 포용할 정책이 나와야 한다. 원치 않은 임신과 출산, 양육을 지원할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

[전국매일신문] 최재혁 지방부국장
jhchoi@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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